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0권 7

Skunky 2023. 10. 3. 08:00

大智度初品中 ‘十方諸菩薩來’釋論 第十五 之餘卷第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15. 초품 중 시방의 보살들이 모여 오심’을 풀이함 12

 

▶經. 持諸 華 香 瓔珞 末香 澤香 燒香 塗香 衣服 幢蓋 向釋迦牟尼佛所。

到已 頭面禮佛足 一面立。澤 못 택

▷經. 온갖 華(화)=꽃, 香(향), 瓔珞(영락), 末香(말향)=가루향, 澤香(택향)=향수, 燒香(소향)=태우는 향, 塗香(도향)=바르는 향, 衣服(의복) 幢蓋(당개)=당기와 일산을 가지고 석가모니부처님께로 향하였으며,

도착해서는 머리와 얼굴을 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는 한쪽에 서 있었다.

 

▶論. 問曰, 應言'禮', 何以名'頭面禮足'?

▷論. 묻나니, 예를 올렸다고만 하여도 마땅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頭面禮足(두면예족)=머리와 얼굴을 발에 대어 예를 올렸다’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 人身中第一貴者頭, 五情所著 而最在上故, 足第一賤 履不淨處,最在下故。是故 以所貴禮所賤, 貴重供養故。

답하나니, 사람의 몸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이 머리이니, 다섯 가지의 감정=五情(오정, 안이비설신의)이 붙어있는 곳이며,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발은 가장 천하게 여기니, 깨끗하지 못한 곳을 밟고 다니기 때문이며,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貴禮所賤(귀례소천)=귀한 것으로 천한 곳에 대어 예를 올리는 것은 상대를 귀히 여기고 존중하며 공양하는 것이 되는 까닭이 되느니라.

 

5정(情)은 5근, 곧 안ㆍ이ㆍ비ㆍ설ㆍ신을 말한다. 앞에서는 6정(情)을 말하면서 ‘이 명색에서 안(眼) 등의 6정(情)이 생겨나니, 이를 6입(入)이라 한다’고 했다.

 

復次 有 下中上禮, 下者揖, 中者跪, 上者稽首. 頭面禮足 是上供養。

以是故 佛毘尼中 下坐比丘 兩手捉上坐兩足 以頭面禮。揖 읍할 읍, 跪 꿇어앉을 궤

또한 상등ㆍ중등ㆍ하등의 예(禮)가 있으니, 하등의 예법이란 揖(읍)=합장하는 것이요, 중등의 예법이란 跪(궤)=꿇어앉는 것이요, 상등의 에법은 稽首(계수)=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머리와 얼굴을 발에 대어 예를 올리는=頭面禮足(두면예족)이란 최상의 공양이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비니(毘尼, vinaya. 율장律藏)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랫자리=下座(하좌)의 비구는 두 손으로 윗자리=上座(상좌) 비구의 두 발을 잡고 이마를 그 발에 대고 (머리와 얼굴로써) 예를 올리라'고 하셨느니라.

 

問曰, 四種身儀, 若坐 若立 若行 若臥, 何以故一面立?

묻나니, 네 가지 몸의 위의란 앉거나 서거나 다니거나 눕는 것인데 어찌하여 한쪽에 서 있는 것입니까?

 

答曰, 爲來故 不應行, 爲恭敬供養故 不應臥, 此事易明 何足問耶?

應問'或坐 或立.。坐者 於供養不重, 立者 恭敬供養法。

답하나니, 멀리서 왔기 때문에 다니지 않는 것이며, 공경히 공양하기 때문에 누울 수 없는 것이라. 이는 알기 쉬운 것인지라 흡족한 질문이 아니니라.

마땅히 물어야 할 것은 앉거나 혹은 서 있는 것으로, 앉음은 공양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되고, 서 있음은 공경하고 공양하는 법이 되는 것이다.

 

復次 佛法中 諸外道出家 及一切白衣 來到佛所 皆坐。

外道他法輕佛 故坐, 白衣如客 是故坐, 一切五衆身 心屬佛 是故立。

또한 불법에는 출가한 외도들이나 일체의 속인들이 찾아 오면 모두가 앉도록 하나니,

외도는 불법이 남의 법이고, 부처님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에 앉는 것이며,

속인은 손님과 같은 까닭에 앉는 것이지만

일체의 다섯 대중=五衆(오중, 비구 비구니 사미 식차마나 사미니)은 몸과 마음이 부처님에게 속하는 까닭에 (귀명한 까닭에) 서 있는 것이다.

 

若得道 諸阿羅漢, 如舍利弗 目連 須菩提等 所作已辦 是故聽坐,

餘雖得三道 亦不聽坐, 大事未辦 結賊未破故。

譬如王臣 大有功勳故 得坐。是諸菩薩中 雖有白衣 以從遠 來供養佛故立。

만약 도를 얻은 모든 아라한, 즉 사리불 목건련이나 수보리와 같은 이들은 할 일을 이미 끝냈으므로 앉으라고 허락하셨으나,

다른 이들은 비록 삼승의 도=三道(삼도)를 얻었더라도 앉기를 허락하시지 않으니,

큰일을 아직 다 끝내지 못하였고, 번뇌=結(결)의 도적을 아직 부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왕의 신하가 큰 공로가 있는 까닭에 앉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

이 보살 가운데에는 비록 속인도 있었으나 멀리서 와서 부처님께 공양하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니라.

 

▶經. 白佛言, '寶積如來 致問世尊, 少惱 少患 興居輕利 氣力安樂不?' 又以此 千葉金色蓮華 供養世尊。

▷經. (보명 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적여래께서 세존께 문안하시기를 ‘세존께서는 번뇌가 적으시고, 병환이 적으시며, 기거에 경쾌하시고, 기력 있으시며, 안락하십니까? 하시며,

또한 이 천(千) 잎의 금빛 연꽃으로 세존께 공양하라 하셨습니다.'

 

▶論. 問曰, 寶積佛一切智, 何以方問訊 釋迦牟尼佛 少惱 少患 興居輕利 氣力安樂不?

▷論. 묻나니, 보적부처님께서는 온갖 지혜를 갖추셨거늘 어찌하여 석가모니부처님께 문안하기를 '번뇌 적으시고 병환 적으시며, 기거에 경쾌하시고 기력 있으시며 안락하십니까' 하신 것입니까?

 

答曰, 諸佛法爾 知而故問。如毘尼中 達貳迦比丘 作赤色瓦窟 佛見已知而問, '阿難 此作何物?'

阿難白佛, '是陶家子出家 字達貳迦 作小草舍 常爲放牛人所壞 三作三破 是故作 此瓦舍'

답하나니, 부처님들의 법이 그러하나니, 아시면서도 짐짓 물으신 것이라.

비니(毘尼, vinaya. 율장律藏) 가운데 달니가(達貳迦, Dhaniya)비구가 붉은 기와로 토굴을 지었는데 부처님께서 보시고는 아난에게 물으시기를, '아난아 이게 무엇이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이는 옹기장이의 아들로서 출가한 달니가가 조그마한 초막을 지었으나, 항상 소먹이는 사람에 의해 부서져서, 세 번 지어 세 번 모두 부서졌으므로 이렇게 기와집을 지었습니다.'

 

佛語阿難, '破此瓦窟, 何以故 外道輩當言, 佛大師在時 漏處法出!' 如是等 處處知而故問。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기와 토굴을 허물어라. 왜냐하면 외도의 무리들이 필히 말하기를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계실 때 이미 잘못된 법이 나왔다고 하리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곳곳에 대해 빠짐없이 아시면서도 짐짓 물으신 것이다.

 

復次 佛雖一切智 隨世界法 世人問訊 佛亦問訊 佛人中生 受人法 寒熱 生死 與人等 問訊法 亦應等。

復次 世界中大貴 大賤 不應相問訊, 佛等力故 應相問訊。

또한 부처님께서는 비록 일체지이시나, 세상의 법을 따르시어 세상 사람들이 문안을 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도 문안하셨다.

부처님께서 이 인간 중에 태어나셔서 인간의 법을 받으시고, 추위ㆍ더위ㆍ태어남ㆍ죽음을 사람들과 같이 받으시니, 문안하는 법도 마땅히 같아야 하리라.

또한 세상에서는 크게 귀한 자와 크게 천한 자가 서로 문안할 수 없으나, 부처님의 힘은 등등한 까닭에 서로 문안할 수 있는 것이니라.

 

復次 是多寶世界 淸淨莊嚴, 佛身色像 光明亦大, 若不問訊 人謂輕慢。

又復 欲示佛世界 身色光明 種種雖勝, 智慧神力 俱等無異, 是故問訊。

또한 이 다보세계는 청정하게 장엄되었고, 부처님의 몸과 광명 역시 위대하니, 만일 문안을 드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업신여긴다’ 하리라.

또한 비록 부처님 세계의 색신광명(色身光明)이 갖가지로 수승하시나, 지혜와 신력이 더불어 평등하여 차이가 없음을 보이시고자 하시는 뜻으로 문안을 드린 것이니라.

 

問曰, 何以問 '少病 少惱不'?

묻나니, 어째서 ‘번뇌가 적으시고, 걱정이 적으신가’하고 물은 것입니까?

 

答曰, 有二種病, 一者 外因緣病, 二者 內因緣病。

外者 寒熱 飢渴 兵刃 刀杖 墜落 堆壓 如是等種種外患 名爲惱。

內者 飮食不節 臥起無常 四百四病 如是等種種 名爲內病。

如此二病 有身皆苦 是故問, '少惱 少患不?' 堆 언덕 퇴, 壓 누를 압, 싫어할 염

답하나니, 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바깥 인연으로 빚어지는 병이요, 둘째는 속의 인연으로 빚어지는 병이라.

外者(외자)=바깥의 인연이란 추위ㆍ더위ㆍ굶주림ㆍ목마름ㆍ병장기에 찔리거나 베이는 것ㆍ칼이나 몽둥이로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무너져 갇히는 등등의 일이니, 이러한 갖가지 바깥의 인연으로 일어날 수 있는 근심거리들을 '惱(뇌)=번뇌'라 하며, 

內者(내자)=속의 인연이란 음식이 고르지 못하거나, 앉고 누움에 절도가 없는 등의 404가지 병이 있으니, 이러한 갖가지들을 '內病(내병)=속의 병'이라 하니, 

이 두 가지의 병이 몸에 있다면 모두 괴로우니, 그러므로 문안하기를 ‘번뇌 적으시고 병환 적으십니까’라고 물으신 것이다.

 

問曰, 何以不問 '無惱 無病', 而問'少惱 少患'?

묻나니, 어찌하여 '번뇌 없으시고 병환 없으십니까'라고 묻지 않으시고 '번뇌 적으시고 병환 적으십니까'라고 물은 것입니까?

 

答曰, 聖人實知 '身爲苦本 無不病時'。

何以故 是四大 合而爲身, 地水火風 性不相宜 各各相害。

譬如疽瘡 無不痛時 若以藥塗 可得少差 而不可愈

人身亦如是 常病常治, 治故得活 不治則死。

以是故 不得問 '無惱 無病'。外患 常有 風 雨 寒 熱 爲惱故。

疽 등창 저, 瘡 부스럼 창, 愈 나을 유, 

답하나니, 성인께서는 실로 이 몸이 괴로움의 근본이어서 병이 없을 때가 없음을 아시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흙ㆍ물ㆍ불ㆍ바람(地水火風)의 사대(四大)가 모여서 몸을 이루고 있으나, 각각의 성품이 서로를 용납하지 않고 각각 서로를 해치기 때문이라.

비유하자면, 마치 疽瘡(저창)=종기와 같이, 아프지 않을 때가 없으나, 약을 발라 치료하면 잠시 차도가 있지만 낫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항상 병이 들고 항상 치료를 하여야 하나니, 치료가 되는 까닭에 생명을 얻으나, 고치지 못하면 곧 죽게 되나니,

그러한 때문에 ‘번뇌 없으시고 병환 없으십니까’라고 묻지 못한다.

外患(외환)=바깥의 근심이란, 항상 바람ㆍ비ㆍ추위ㆍ더위 (風풍 雨우 寒한 熱열)에 시달림을 받기 때문이라.

 

復有身四威儀, 坐 臥 行 住, 久坐則極惱, 久臥 久住 久行皆惱。以是故問 '少惱 少患'。

또한 몸의 四威儀(사위의)=네 가지 거동이 있으니, 坐=앉고 臥=눕고 行=다니고 住=머묾이라.

오래 앉아 있으면 괴로움이 극치에 이르듯이, 오래 눕거나 오래 머물거나 오래 걷는 것도 모두 괴로우니, 그러므로 ‘번뇌 적으시고 병환 적으십니까’라고 물으시는 것이다.

 

問曰, 問 '少惱 少患'則足, 何以復言 '興居輕利'?

묻나니, ‘번뇌 적으시고, 병환 적으십니까’라고 묻기만 하면 족하거늘, 어찌하여 다시 ‘기거하심에 경쾌하십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 人雖病差 未得平復 以是故問 '興居輕利'。

답하나니, (만약 병이 들었다면) 사람이 비록 병에 차도가 있을지라도 아직 완전하게 쾌차하지 않을 것이므로 ‘기거에 경쾌하십니까’라고 물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