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9권 7

Skunky 2023. 9. 27. 08:00

大智度初品中 ‘十方諸菩薩來’ 釋論 第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15. 초품 중 시방의 보살들이 모여 오심’을 풀이함 3

 

復次 佛與阿難 入舍衛城乞食 是時 有一貧老母 立在道頭。

阿難白佛, '此人可愍 佛應當度'

佛語阿難, '是人無因緣'

阿難言, '佛往近之 此人見佛相好光明 發歡喜心 爲作因緣'

또한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와 함께 사위성(舍衛城 슈라바스티 Śrāvasti)에서 걸식을 하실 때에, 어느 가난한 할머니=老母(노모)가 길가에 서 있었다.

이에 아난 존자께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이 노인이 매우 가엾으니, 부처님께서 제도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인연이 없느니라.'

아난이 다시 말씀드리기를, '부처님께서 가까이 가시면, 이 분이 부처님의 상호와 광명을 보고는 환희하는 마음을 내어, 인연을 짓게 될 것입니다.'

 

佛往近之 迴身背佛, 佛從四邊往 便四向背佛 仰面上向, 佛從上來 低頭下向, 佛從地出 兩手覆眼 不肯視佛。

부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시니, 그 할머니는 등을 돌며 외면하였고,

부처님께서 사방으로 접근하시면 곧 다른 네 방향으로 돌아서서 부처님께 등을 돌렸으며,

얼굴을 쳐다보려고 하시면 위로 돌리고,

부처님께서 위로부터 다가가시면 머리를 숙여 아래로 향하고,

부처님께서 땅으로부터 솟아 나오시면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등을 돌려 부처님을 보려 하지 않았다.

 

佛語阿難, '復欲作何因緣有?'  如是人 無度因緣 不得見佛。

以是故佛言, '佛難得値 如優曇波羅樹華' 譬如 水雨雖多 處處易得 餓鬼常渴 不能得飮。

이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르, '다시 또 어떻게 인연을 지으면 좋겠느냐?'

이와 같은 사람들은 제도될 인연이 없어서 부처님을 뵙지 못하는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만나기 어려우니, 마치 우담바라나무의 꽃과 같다.'고 하셨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물과 비가 많아 곳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을지라도 아귀는 항상 마시지 못하여 갈증에 시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汝言, '九十一劫 三劫有佛' 爲一佛世界故 不爲一切餘諸世界, '是處劫 空無有佛出 甚可憐愍'者,

亦是此閒一佛世界 非爲一切餘諸世界也。以是故 知有十方佛。

그대가 말하기를 '91겁 동안에 세 겁 동안만 부처님이 계셨다'고 한 것은 한 부처님의 세계를 기준한 것으로, 나머지 모든 세계가 그러한 것은 아니며,

'그러한 겁은 공(空)하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지 않으니 매우 가엾다'고 한 것 역시도 이 겁 동안은 한 세계에 한 부처님이 계시지 않음을 말함이요, 그 밖의 다른 모든 세계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시방에 부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는 것이니라.

 

復次 聲聞法中 有十方佛 汝自不解. 如'雜阿含經'中說, '譬如 大雨連注 渧渧無閒 不可知數。諸世界亦如是 我見東方 無量世界 有成 有住 有壞 其數甚多 不可分別, 如是乃至十方。渧 물방울 제

또한 성문의 법에도 시방의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였는데, 그대 자신이 스스로 잘못 이해한 것이니라.

'잡아함경(雜阿含經, Saṃyuktāgama)'에서 이르기를, '비유하건대 큰 비가 쏟아 내릴 때의 물방울은 간격이 없어 그 수를 알 수 없듯이, 모든 세계 역시 그와 같으니, 내가 동쪽의 무량한 세계를 보건대, 어떤 곳은 이루어지는=成(성)하고, 어떤 곳은 머무는=住(주)하고, 어떤 곳은 무너지는=壞(괴)하고 있는 등의 수효가 매우 많아 분별할 수가 없으니, 이와 마찬가지로 시방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그러하느니라.

 

是十方世界中 無量衆生 有三種身苦, 老 病 死. 三種心苦, 婬 瞋 癡. 三種後世苦, 地獄 餓鬼 畜生.

一切世界 皆有三種人, 下 中 上. 下人 著現世樂, 中人 求後世樂, 上人求道 有慈悲心 憐愍衆生。

有因緣 云何無果報?

이러한 시방 세계 안의 중생들에게는 몸의 고통이 세 가지=三種(삼종)이 있으니 늙음ㆍ병듦ㆍ죽음이요,

마음의 고통이 세 가지=三種(삼종)이 있으니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요,

뒷 세상에서 받게 되는 고통이 세 가지=三種(삼종)이 있으니, 지옥ㆍ아귀ㆍ축생이라.

일체 세계에는 모두 세 종류=三種(삼종)의 사람이 있으니, 하등ㆍ중등ㆍ상등이라.

하등의 사람은 이 세상의 쾌락에 집착하고,

중등의 사람은 후세의 쾌락을 구하며,

상등의 사람은 도를 구하며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나니,

이와 같이 인연이라는 것이 있거늘 어찌 과보가 없겠는가.

 

佛言, 若無 老 病 死 佛不出世. 是人見 老 病 死 苦惱衆生 心中作願, '我當作佛 以度脫之 拔其心病 濟後世苦'

如是十方世界 皆有佛出因緣 何以故 獨言 '此閒有佛 餘處無'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늙음ㆍ병듦ㆍ죽음이 없다면 부처가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듯이,

이 사람은 늙음ㆍ병듦ㆍ죽음으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보고 마음속에 서원을 세우되 '내가 마땅히 부처가 되어, 그들의 마음의 병을 고쳐 주고 구제하여서, 뒷세상의 괴로움도 없애 주리라' 하나니, 

이렇게 시방세계에는 모두 부처님이 나오실 인연이 있거늘 어찌하여 여기에만 부처님이 계시고 딴 곳에는 부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譬如有人言 '有木無火 有濕地而無水' 是不可信。

佛亦如是 衆生身 有老病死苦, 心有 婬瞋癡病, 佛爲斷此三苦 令得三乘故出世。一切世界中 皆有此苦 云何無佛?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나무에 불의 성질이 없고, 습한 땅에 물이 없다'고 말한다면 믿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몸에 늙음ㆍ병듦ㆍ죽음의 고통이 있고 마음에는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병이 있으니, 부처님께서 이 세 가지 괴로움=三苦(삼고)를 끊고 세 가지 수레=三乘(삼승)을 얻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오신 것이라.

일체의 세계에 모두 이러한 괴로움이 있거늘 어찌하여 부처님이 아니 계시겠는가!

 

復次 盲人無量 而言唯須一醫 此亦不然. 以是故 應更有十方佛。

復次 '長阿含'中 有經言, 有鬼神王守北方 與衆多百千萬鬼神 後夜到佛所 頭面禮佛足 一面住 放淸淨光 普照祇桓 皆令大明。合掌讚佛說此二偈:

또한 '눈먼 맹인들이 무량하게 많거늘 오직 한 사람의 의사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또한 옳지 못하므로, 마땅히 시방의 부처님이 계시는 것이다.

'장아함(長阿含)' 가운데의 한 경전에서 말하기를 '북방을 지키는 어떤 귀신왕이 백천만이나 되는 귀신들과 함께 새벽 5시 경=後夜(후야)에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닿는 예를 올리고는 한쪽에 서서 청정한 광명을 놓아 기원정사(祇桓精舍 Jetavanā-anāthapiṇḍasyārāma)를 두루 비추어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찬탄하는 두 가지 게송을 읊었으니, 

 

大精進人我歸命 佛二足中尊最上, 智慧眼人能知見 諸天不解此慧事。

크게 정진하시는 분이시여, 제가 이제 귀명(歸命)합니다.

부처님은 두 발 가진 무리에서 가장 존귀하시며,

지혜의 눈을 가지신 분이시여, 능히 보고 아시나니
하늘의 신들조차 그 지혜를 헤아려 알지 못합니다.

 

過去未來今諸佛, 一切我皆稽首禮, 如是我今歸命佛 亦如恭敬三世尊。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들께, 저를 비롯한 일체가 머리 숙여 예를 올립니다.

이와 같이 제가 이제 부처님께 귀명함은 마치 삼세의 세존께 공경 올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如是偈中 有十方佛。鬼神王 稽首三世佛, 然後別歸命 釋迦牟尼佛。

若無十方現在佛 當應但歸命 釋迦#文尼佛, 不應言 過去 未來 現在諸佛。是故 知有十方佛。

이와 같이 게송 가운데 시방의 부처님이 계신다는 말이 있듯이, 귀신의 왕이 3세의 부처님께 머리 숙인 뒤에 특별히 석가모니부처님께 귀명한 것으로, 만약 시방 세계에 현재의 부처님이 계시지 않다면, 의당 석가모니부처님에게만 귀명했을 것이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들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방세계의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復次 過去世 有無量佛, 未來世 亦有無量佛, 以是故 現在亦應有無量佛。

復次 若佛於聲聞法中 言有十方無數無量佛, 衆生當言 '佛易可遇' 不勤求脫, '若不値此佛 當遇彼佛' 如是懈怠 不勤求度。

또한 과거 세상에도 한량없는 부처님이 계셨고, 미래 세상에도 한량없는 부처님이 계실 것이라. 그러므로 현재에도 한량없는 부처님이 계시는 것이며, 

또한 만약 부처님께서 성문의 법 가운데에서 '시방에 무수하고 무량한 부처님이 계시다'고 말씀하셨다면, 중생들은 당연히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만나기 쉬울 것이다’고 할 것이며, 또한 애써서 해탈을 구하지 않은 채 '만약 이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저 부처님을 만나면 될 것이다'고 하며, 이처럼 게으름을 피우고 부지런히 해탈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譬如 鹿未被箭時 不知怖畏, 旣被箭已 踔圍而出。踔 달릴 초

人亦如是 有老病死苦, 聞唯有一佛 甚難可遇 心便怖畏 勤行精進 疾得度苦。

비유하자면, 마치 사슴이 화살을 맞기 전에는 두려움을 모르다가 화살을 맞은 뒤에야 사냥터=圍(위)를 벗어나고자 달려나가는 것과 같으니, 사람들도 그와 같이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있거늘, 오직 한 부처님만 계시어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고 들으면, 마음속에 문득 두려움을 일어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빨리 괴로움을 면하고자 하게 되나니, 

 

以是故 佛於聲聞法中 不言有十方佛 亦不言無。

若有十方佛 汝言 無得無限罪, 若無十方佛 而我言有 生無量佛想 得恭敬福。

所以者何 善心因緣福德力大故。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성문의 법 가운데에서 시방의 부처님이 계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며, 또한 없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만약 시방세계에 부처님이 계시거늘 그대가 ‘안 계신다’고 말한다면 한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요,

만약 시방세계의 부처님이 계시지 않거늘 내가 ‘계시다’고 말한다면 무량한 부처님을 생각하는=佛想(불상)을 일으켰기에 공경의 복을 받나니,

왜냐하면 착한 마음의 인연은 복덕의 힘이 크기 때문이니라.

 

譬如 慈心三昧力 觀一切衆生 皆見受樂, 雖無實益 以慈觀故 是人得無量福, 十方佛 想亦復如是。

若實有十方佛 而言 無得破十方佛 無量重罪。何以故? 破實事故。

비유하자면, 자심삼매(慈心三昧)의 힘으로 일체 중생이 모두 즐거움을 받음을 관찰하면, 비록 실제의 이익은 없으나 자비한 관찰 때문에 이 사람은 무량한 복덕을 얻는 것과 같으니, 시방의 부처님을 생각함도 이와 같아서 실제로 시방에 부처님이 계시나, 만약 없다고 말한다면 시방의 부처님을 파괴하는 무량한 중죄(重罪)를 짓게 되나니, 왜냐하면 진실함을 깨뜨리게 된 때문이니라.

 

肉眼人 雖俱不知 但心信言 有其福無量, 若實有而意謂 無其罪甚重。

人自用心 尚應信有, 何況 佛自說 摩訶衍中 言實有十方佛 而不信耶?

육안(肉眼)만을 가진 사람이라 비록 두루 알지는 못하나, 다만 마음으로 믿어 ‘계신다’고 말한다면 그 복이 한량이 없으나, 만약 실로 계시는데도 없다고 한다면 그 죄가 매우 무거워지나니, 

사람들 스스로의 마음으로 생각하여 있다고 믿어야 할 것이거늘, 하물며 부처님께서 스스로 마하연(대승) 가운데서 '실로 시방의 부처님이 계시니, 어찌 믿지 않겠는가'라고 말씀하셨으니,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