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광명각품(光明覺品) 6
① 智慧身
6身心悉平等하고 內外皆解脫일새 永劫住正念하사 無着無所繫로다
7意淨光明者의 所行無染着이라 智眼靡不周하사 廣大利衆生이로다
8一身爲無量이요 無量復爲一이라 了知諸世間하사 現形徧一切로다
9此身無所從이며 亦無所積聚어늘 衆生分別故로 見佛種種身이로다
10心分別世間호대 是心無所有라 如來知此法이시니 如是見佛身이니라
6. 身心悉平等(신심실평등)하고, 몸과 마음이 다 평등하고 內外皆解脫(내외개해탈)일새. 안팎으로 다 해탈하시며
[물결 속에는 몸도 있고 마음도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우리가 보통 쓰는 마음으로 육신과 상대되는 마음입니다.]
永劫住正念(영겁주정념)하사, 영원한 겁 동안 정념에 머무사 無着無所繫(무착무소계)로다. 얽매임도 없으시도다
집착도 얽매임도 없으시도다
[불교에서 正은 무조건 중도입니다. 그래서 8정도는 전부 중도로 이해해야 됩니다.
正命= 치우치지 아니한, 중도적인 직업. 正見(정견)”바로 본다= 중도로 본다는 중도정견입니다. 正念= 바르게 생각한다= 치우치지 않고 중도로 생각하는, 상반되는 이론이나 주장을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다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에서, 어떤 직업은 되고, 어떤 직업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 원리에 입각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예를 들어 사형수 망난이는 자기가 먹고 살기 위해서 망난이 짓도 하는, 그것은 그 사람에게 正命입니다.
초기불교 이론에는 바른 소견이 아닌 편협한 소견의 이론이 많은 편인데, 망난이도 누가해도 할 일입니다.]
[無着無所繫 바로 중도적 삶입니다 無所繫= 걸린 바가 없다. 그러니까 망난이로써 살아야 한다면 망난이로써 살아야 됩니다. 모두 선비 노릇만하고 살수는 없습니다. 활을 만들기도 하고 방패도 만들 수가 있는 것이지요. 방패를 팔기도 하고 활도 팔 수도 있는 것이지요. 방패만 팔고 활은 못 판다면 활은 누가 팔아요?
맹자는 활과 방패, 두 가지 중에 이왕이면 방패를 만들어 팔아라. 활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고, 방패는 사람을 살리는 것 이니까 이왕이면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은 맹자의 소견입니다.
서장에서 대혜스님은 공자를 우습게 봐버렸습니다. 확철대오한 사람 눈에는 노자ㆍ장자ㆍ공자ㆍ맹자들의 소견은 사실 몇 푼어치 안 됩니다. 정말 우리 부처님이 깨달음을 터득한 과정이나 희생만 봐도 어떤 성인과도 비교할 수가 없고, 그 깨달음의 내용은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되는 아주 위대하고 우수한 것이지요.
無着無所繫가 되려면 중도가 되어야 집착도 없고 매인 바도 없게 되는 것이지, 좋은 직업만 하고, 예를 들어서 방패만 만들고 화살은 못 만들겠다면, 그것은 집착이요, 매인바입니다. 화살도 만들 수가 있고, 방패도 만들 수가 있어야 됩니다.]
7.意淨光明者(의정광명자)의, 뜻이 청정하여 광명한 이시여! 所行은 無染着(소행무염착)이라. 행하는 바에 물듦이 없고
智眼靡不周(지안미불주)하사, 지혜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 없으사
廣大利衆生(광대이중생)이로다.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시네
[[뜻이 텅 비어 맑은 사람= 意淨光明者]]
8.一身爲無量(일신위무량)이요 無量復爲一(무량부위일)이라. 한 몸으로 무량을 이루고 무량으로 다시 하나를 이루며
[ 一身爲無量 無量復爲一 =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화엄경의 깊고 오묘한 이치를 법성게 안에 함축된 것으로, 불교와 인연 맺은 사람이 세상 마감하고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가장 좋은 선물로 법성게를 읽어주는 것이 최고 좋은 선물입니다. 영가가 그 법성게를 듣고만 가도 離苦得樂(이고득락)하는 겁니다. 옛날 도인 스님들은 儀式集(의식집)을 만들면서 그 생각을 한 겁니다. ]
了知諸世間(요지제세간)하사, 온 세간을 분명히 아시어 現形遍一切(현형변일체)로다. 두루 일체에 모습을 보이시네
9.此身은 無所從(차신무소종)이며, 이 몸은 온 곳이 없고 亦無所積聚(역무소적취)어늘, 쌓여 모인 바도 없으되
衆生分別故(중생분별고)로 見佛種種身(견불종종신)이로다. 중생들은 분별하는 까닭에 갖가지로 부처님 몸을 보네
[[此身→ 佛身→ 우주의 원리]]
10.心分別世間(심분별세간)호대, 마음이 세간을 분별하나 是心은 無所有(시심무소유)라. 그 마음이 있지 않도다.
如來知此法(여래지차법)이시니, 여래는 이 법=도리를 아시니
如是見佛身(여시견불신)이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 몸 볼지니라. = 이러한 이치로써 佛身을 봐야한다.
[[心分別世間 是心無所有 이 마음이 다 분별하고, 있는 바가 없으면서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것이 중도입니다]]
七, 攝內外德
(1) 光明徧照
爾時에 光明이 過百千世界하야 徧照東方百萬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爾時에 光明이 過百千世界(과백천세계)하야 그때 광명이 십만 세계를 지나
遍照東方百萬世界(변조동방백만세계)하고 南西北方(남서북방)과 동쪽으로 백만 세계를 두루 비추고 남서북방과
四維上下(사유상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시니 사유상하도 역시 그와 같이 하니
彼一一世界中(피일일세계중)에 皆有百億閻浮提(개유백억염부제)와 그 낱낱의 세계 안에 있는 백억의 염부제로부터
乃至百億色究竟天(내지백억색구경천)이라 其中所有(기중소유)가 백억의 색구경천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있는 것들이
悉皆明現(실개명현)하니, 모두 환히 나타났더라.
[[攝內外德. 내외의 덕을 포섭한다, 안과 밖으로 포섭하는 德을 나타내다]]
(2) 世尊坐座 세존이 자리에 앉으시다.
彼一一閻浮提中에 悉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彼一一閻浮提中(피일일염부제중)에 悉見如來(실견여래)가 그 낱낱의 염부제 안을 모두 보니 여래께서
坐蓮華藏師子之座(좌연화장사자지좌)어시든, 연화장사자좌에 앉으시어
十佛刹微塵數菩薩(십불찰미진수보살)의 所共圍遶(소공위요)라.10 불찰미진수의 보살들로 에워쌓여 계셨으니
悉以佛神力故(실이불신력고)로,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이었다.
十方各有一大菩薩(시방각유일대보살)이, 시방에 각각 있는 한 대보살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일일각여십불찰미진수제보살)로 俱(구)하야, 저마다 각각 10불찰 미진 수 보살을 거느리고
來詣佛所하시니,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으니
其大菩薩(기대보살)은 謂文殊師利等(위문수사리등)이며 그 큰 보살들은 이른바 문수사리 등이요
所從來國(소종래국)은 謂金色世界等(위금색세계등)이며 떠나온 국토들은 이른바 금색세계 등이며
本所事佛(본소사불)은 謂不動智如來等(위부동지여래등)이니라. 본래 섬기는 부처님들은 이른바 부동지여래 등이시었다.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그때 모든 곳의 문수사리보살이 각자 부처님 처소에서 동시에 한 목소리로 이러한 게송을 설하여했다.
① 佛法 不可思議
1如來最自在하사 超世無所依하시 具一切功德하사 度脫於諸有로다
2無染無所着하시며 無想無依止하사 體性不可量이나 見者咸稱歎이로다
3光明徧淸淨하시며 塵累悉蠲滌하사 不動離二邊하시니 此是如來智로다
4若有見如來가 身心離分別이면 則於一切法에 永出諸疑滯로다
5一切世間中에 處處轉法輪하사대 無性無所轉이시니 導師方便說이로다
1.如來最自在(여래최자재)하사 여래는 가장 자재하시니
超世無所依(초세무소의)하시며, 세간을 초월하여 의지함이 없으시며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 上柱天下柱地(상주천하주지)라.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밑으로는 땅을 버텼더라. 絶名相(절명상)호대 貫古今(관고금)하고, 이름과 모양을 다 떠났으되 古今을 꿰뚫고 있다. → 오가해 함허스님 서문.]
具一切功德(구일체공덕)하사, 일체의 공덕 갖추시어 [우리 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一切功德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마음 들여다보면 볼수록 마음의 능력ㆍ 위대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度脫於諸有(도탈어제유)로다 모든 있음으로부터 벗어났더라. [눈에 보이는 것이 諸有, 모든 있음을 다 초월했습니다. 마음 먹기대로 기쁘고 싶으면 기쁘고, 슬프고 싶으면 슬프고 온갖 공덕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
2. 無染無所着(무염무소착)하시며, 물듦도 없고 집착도 없으시며
無想無依止(무상무의지)하사, 생각도 없고 의지함도 없으시며
體性不可量(체성불가량)이나, 체성이 헤아릴 수 없는 양이시라
見者咸稱歎(견자함칭탄)이로다. 보는 이마다 칭탄하도다.
[이 마음의 도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되면, 신기하다ㆍ참 불가사의 하다ㆍ어찌 이러한 도리를 부처님이 말씀했단 말인가?’하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저 칭찬과 찬탄이 늘어지는 것이지요.]
3.光明遍淸淨(광명변청정)하시며, 광명은 두루 청정하시고
塵累悉蠲滌(진루실견척)하사, 번뇌는 다 씻어 없애시며
[塵累=번뇌와 먼지와 더러운 것들을 悉蠲滌=전부 드러내고 씻어 내시사]
不動離二邊(부동이이변)하시니, 부동 속에 양변을 여의시니
[二邊= 있음과 없음.=양변. 二邊을 떠나는 것만이 아니고 수용도 하는 것이 중도입니다.]
此是如來智(차시여래지)로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지혜로다.
[여래의 지혜= 중도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육도만행이라든지, 일체 생활이라든지, 불교에서 하는 일, 아니면 보통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은 전부 중도의 원리로 되어 있으니 그 중도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줄 알면, 그것은 곧 여래의 지혜라는 뜻입니다.]
4.若有見如來(약유견여래)가, 어떤 이가 여래를 보고 身心離分別(신심이분별)이면 몸과 마음에 분별을 떠나면
則於一切法(즉어일체법)에, 곧 일체법에서 永出諸疑滯(영출제의체)로다. 모든 의심에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영원히 모든 의심과 막힘을 벗어나리라.
5.一切世間中(일체세간중)에, 일체 세간= 온 세간 속에서 處處轉法輪(처처전법륜)하사대, 곳곳마다 법륜 굴리시되
無性無所轉(무성무소전)이시니, 성품도 없고 굴리심도 없으시니 導師方便說(도사방편설)이로다. 도사의 방편설이로다
[一切世間中에서 處處轉法輪 = 溪聲便是廣長舌(계성변시광장설), 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광장 설법이고, 저 산천초목은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다. 법당에서 글자로 된 이 화엄경 펼쳐놓고 하는, 이것은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가짜 설법이고 진짜 설법은 산천초목ㆍ세상만사 있는 그대로가 설법입니다. 無性無所轉이시니 導師方便說이로다. 그런데 부처님도 49년 동안 설법하신 것이 다 方便說, 방편을 說한 것이니까 마지막에 나는 한 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는 그런 말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② 就入方便
6於法無疑惑하고 永絶諸戲論하야 不生分別心이면 是念佛菩提니라
7了知差別法하고 不着於言說하야 無有一與多하면 是名隨佛敎니라
8多中無一性이요 一亦無有多니 如是二俱捨하면 普入佛功德이니라
9衆生及國土가 一切皆寂滅이니 無依無分別하면 能入佛菩提니라
10衆生及國土가 一異不可得이니 如是善觀察하면 名知佛法義니라
6.於法無疑惑(어법무의혹)하고, 법에 의혹이 없고
永絶諸戲論(영절제희론)하야, 온갖 희론을 길이 끊어 버리며,
[戲論이란 이런저런 설법 이론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말로 하는 법문은 전부 戲論이라 할 수 있습니다.]
不生分別心(불생분별심)이면, 분별심을 일으키지 아니할 것 같으면
是念佛菩提(시념불보리)니라. 그것이 불보리를 생각함이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佛菩提= 부처님 깨달음이네.
7.了知差別法(요지차별법)하고, 차별 법을 분명히 알고 不着於言說(불착어언설)하야, 言說= 말에 집착하지 않으며.
[[차별상을 그대로 알 것은 다 알되 言說에 집착하지 아니한다]]
無有一與多(무유일여다)하면, 하나와 더불어 많음이 없으면 → 하나다ㆍ많다하는 분별차별이 없으면
是名隨佛敎(시명수불교)니라. 이것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 함이네. [불교를 따르는 길 아주 간단합니다. 나와 세상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로 보면서 또한 많은 것, 전체로 보면서 또 개인으로 보는 것에 걸리지 않는= 無有一與多, 一도 없고 多도 없으니까 나라고 고집할 것도 없고, 전체를 고집할 것도 없는 이치를 봐야 되는 것이지요.]
8. 多中無一性(다중무일성)이요, 많음 속에 한 성품도 없고 = 많은 것 가운데는 一性도 없으며
一亦無有多(일역무유다)니, 하나에도 많음이 없으니 = 하나에도 또한 多가 없음이니
如是二俱捨(여시이구사)하면, 이렇듯 둘을 다 버리면 普入佛功德(보입불공덕)이니라. 부처님 공덕에 널리 들어가리라
[佛功德= 우리 한 마음이 공덕. 우리는 부처님을 역사적인 석가모니에 겹쳐서 神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로 의식화 되어 있습니다. 타종교인들이 존재하지 않는 신을 의식화 해서 그리고 있는 것 이상으로 우리 불자들도 부처님에 대해서 사실 알게 모르게 의식화 되어 있습니다.
근본적인 佛功德= 자기 공덕= 자기 한 마음의 공덕= 자기 불성의 공덕을 배제하고 달리 3000년 전에 석가모니 공덕이 크고 위대한 존재라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佛功德= 우리 일심의 공덕, 그 일심 속에는 多도 없고 一도 없는, 一이면서 多고 多면서 一입니다.]
[[無有一與多, 一與多 하나다ㆍ많다하는 분별차별이 없으면 是名隨佛敎=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다. 개인으로 보면 하나이고, 전체로 보면 많다, 전체다. 또 세상과 나, 나와 세상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로 보면서 또한 많은 것으로 보고, 전체로 보면서 또 개인으로 봄에 걸리지 않아야 되는 無有一與多입니다. 一도 없고 多도 없으니까 나라고 고집할 것도 없고, 전체를 또 인정할 것도 없는 이치를 봐야 되는 것]]
[[佛功德→자기 공덕 = 자기 한 마음의 공덕 = 자기 불성의 공덕= 일심의 공덕. 그 일심에는 多도 없고 一도 없고, 一이면서 多고 多면서 一입니다.]]
9.衆生及國土(중생급국토)가 一切皆寂滅(일체개적멸)이니, 중생과 국토 모두가 다 적멸하고
無依無分別(무의무분별)하면, 의지함도 없고 분별도 없으면
能入佛菩提(능입불보리)니라. 능히 불보리=깨달음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10. 衆生及國土가, 중생과 국토가 一異不可得(일이불가득)이니, 하나다 다르다 할 수 없으니
[국토가 중생이고, 중생이 국토다. 十身의 중생身 = 국토身. 중생 그대로 부처님의 十身입니다. 衆生과 國土가 一異不可得이라. 하나다ㆍ다르다. 나눌 수 없다.]
如是善觀察(여시선관찰)하면, 이렇게 잘 관찰한다면
名知佛法義(명지불법의)니라. 이름하여 불법의 의의=도리를 안다 하리라.
[[참고; 십신
①衆生身중생신= 六途육도의 衆生중생
②國土身국토신= 六途衆生육도중생의 依處의지처.
③報身업보신= 위의 二身(중생신,국토신)이 태어난 업의 원인(業因) [業因: 이 세상에 있는 모습의 원인이 되는 업(業).]
→ 이상의 삼신(중생신,국토신,업보신)은 염분(染分)에 속하며
④聲聞身성문신= 사제를 관하는(諦觀) 등으로 열반을 구하는 자.
⑤獨覺身독각신= 참선參禪 등으로 홀로 스스로 수행하여 깨닫는 자(獨覺自修者)
⑥菩薩身보살신= 육도(六度=육바라밀) 등으로 보리를 구하는 자
⑦如來身여래신= 불도 수행을 원만히 완성하여 부처를 이룬 묘각불신 (因圓果滿 妙覺佛身)
⑧智身지신= 부처님 몸에 갖춘 깨달은 진실한 지혜(佛身所具 能證實智)
⑨法身법신= 부처님 몸을 갖춘 깨달은 바 진리(佛身所具 所證眞理)
→ 이상 六身육신은 淨分정분에 속屬하며,
⑩虛空身허공신= 범부와 성인(염정染淨) 양쪽의 모양(상相)을 떠난 성범(염정染淨)의 의지하는 바인 주변법계(周遍法界)로서 형태와 질량이 없는(무형량無形量) 실체(實體)라.]]
八, 方便의 德
(1) 光明徧照
爾時에 光明이 過百萬世界하야 徧照東方一億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이시 광명 과백만세계 변조동방 일억세계 서남북방 사유상하 역부여시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피일일세계중 개유백억 염부제 내지 백억구경천 기중소유 실개명현
그때 광명이 백만 세계를 지나 동쪽으로 일억 세계를 두루 비추고 남서북방과 사유상하도 역시 그와 같이 하니 ,그 낱낱의 세계 안에 있는 백억의 염부제로부터 백억의 색구경천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모두 환히 나타났으니,
[[지혜의 안목이 있으면 모든 것이 환하게 눈에 들어 옵니다 여기서 광명을 크게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 각자 마음에 깨달음의 지혜광명이 비추기 시작하면 그 지혜광명에 비춰진 모든 세상과 세상의 이치는 여기에 표현된 것 이상이라는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2) 世尊坐座
彼一一閻浮提中에 各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彼一一閻浮提中에 各見如來가 그 낱낱의 염부제 안에 보니 여래께서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시어 10 불찰미진수의 보살들로 에워쌓여 계셨으니
悉以佛神力故로,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이었다. 十方에 各有一大菩薩이, 시방에 각각 있는 한 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저마다 각각 10불찰 미진 수 보살들을 거느리고
來詣佛所하시니,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으니 其大菩薩은, 그 큰 보살들은 謂文殊師利等이며, 이른바 문수사리 등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본래 섬기는 부처님들은 이른바 부동지여래 등이시었다.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그때 모든 곳의 문수사리보살이 각자 부처님 처소에서 동시에 한 목소리로 이러한 게송을 설했습니다.
① 從體起用方便
1智慧無等法無邊하시며 超諸有海到彼岸하시며 壽量光明悉無比하시니 此功德者方便力이로다
1 體로부터 작용을 일으키는 방편. 우리가 책을 보고 있고, 생각을 굴리면서 이해하고, 글을 새겨 보고, 뜻도 헤아려 보는 이것이 從體起用. 우리의 깊은 본심에서 작용을 일으켜, 이해하고 분별하고 조정하기도 하는 것
攝用歸體= 用을 攝해서 體로 돌아가는, 저녁에는 집에 가고, 법당 예불도 아침에는 대웅전에서 예불해서 각단으로 흩어지고, 저녁에는 각단에서 먼저 예불해서 대웅전으로 모이는 이것이 전부 從體起用ㆍ攝用歸體의 도리입니다.
목탁 치는 것, 예불하는 것, 법당에 드나들 때 오른 발 먼저 내고 왼발 먼저 들이고, 왼 쪽으로 갈 때는 오른 발, 오른쪽으로 들어 갈 때는 왼발, 이것이 전부 작용이 체를 감싸고, 또 체가 작용으로 돌아가는 것. 일체 행위와 의식이 전부 여기에 근거한 것입니다
從體起用= 體로 쫓아 작용을 일으키는/ 낮 = 활발발한 우리 일체 생활
攝用歸體= 用을 攝해서 體로 돌아간다 / 밤 = 體로 돌아감 = 적멸한 자리로 돌아가는 것.]
1. 智慧의 無等法無邊(지혜무등법무변)하시며, 지혜는 같을 이 없고 법은 무변하며
超諸有海到彼岸(초제유해도피안)하시며, 諸有= 모든 있는 것= 만유의 바다 뛰어 넘어 피안에 이르러
壽量光明悉無比(수량광명실무비)하시니, 수명과 광명이 다 비할 데 없으며
[壽量 = 목숨의 량 = 수명의 량 = 무량수 = 무량광]
此功德者의 方便力(차공덕자방변력)이로다. 이것이 공덕자의 방편력이로다
[[此功德者의 方便力= 우리 한 마음, 이 한 물건이 진정한 功德者입니다. 그것이 얼른 이해가 안 되니까, “부처님” 이라는 존재를 등장시켜, 그 존재를 상상 할 수 있도록 하는 매체 역할을 하는 겁니다. 사실은 그 매체를 완전히 버려야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상상 속에, 머릿속에 의식화 되어 있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존재가 불교를 만나기까지는 큰 역할을 했는데, 우리가 제대로 툭 터져 버리려면 의식화 되어 있는 부처를 완전히 깨야 됩니다.]]
③ 寂照方便
2.所有佛法皆明了하시며 常觀三世無厭倦하시며 雖緣境界不分別하시니 此難思者方便力이로다
[寂照; 寂= 체, 照= 用. 작용입니다. 선어록에서는 機用(기용), 교리 상으로는 體用. 또는 寂照(묵조)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黙= 寂. 照= 照]
2.所有佛法皆明了(소유불법개명료)하시며, 있는 모든 불법 분명히 알고
常觀三世無厭倦(상관삼세무염권)하시며, 싫증이나 권태없이 삼세=과거 현재 미랠를 늘 관하며
雖緣境界나 不分別(수연경계불분별)하시니, 비록 경계를 반연하되 분별치 않으면
此難思者方便力(차난사자방편력)이로다. 이것이 난사자(難思者)의 방편력이로다
[難思者= 생각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사람 → 이 세상에 불가사의한 존재는 하나뿐입니다. 너도 나도 다가지고 있는 그 한 물건 뿐이라고요. 역사적인 부처님 간단해서, 부처님생애 한권 읽으면 끝입니다. 그런데 무수한 세월동안 생각하고 궁구해도 다 이해할 수 없는 한 물건, 그것이 難思者입니다.]
④ 理事無礙方便
3. 樂觀衆生無生想하시며 普見諸趣無趣想하시며 恒住禪寂不繫心하시니 此無礙慧方便力이로다
3. 樂觀衆生無生想(낙관중생무생상)하시며, 중생을 즐겨 보되 중생이란 생각 없고
[즐겨 중생을 보되 중생이란 생각이 없다. 중생을 중생 그대로 보는 것은 假觀(가관)이고, 중생을 공하다고 보는, 모든 존재는 공하니까 공하다고 보는 것은 空觀(공관)입니다. 그런데 중생을 부처로 보는 안목은 中道觀(중도관)입니다.
법화경에 眞觀ㆍ淸淨觀(진관,청정관) → 그야말로 중생을 부처로 봐야 그것이 眞觀이고, 淸淨觀입니다.]
普見諸趣無趣想(보견제취무취상)하시며, 여러 갈래 널리 보되 갈래란 생각 없으며
[諸趣= 모든 갈래=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恒住禪寂不繫心(항주선적불계심)하시니, 늘 선정의 고요에 머물러 매이는 마음 없으면
此는 無碍慧方便力(차무애혜방편력)이로다. 이것이 걸림없는 지혜의 방편력이로다
[恒住禪寂不繫心= 항상 禪寂에 머물러서, 禪寂= 선정의 적정한 경계 속에 항상 있으면서 不繫心= 매인바가 없는 탈속이고 자유로워서 걸리지 아니해요.
禪寂을 이야기할 때는 선의 8대 정신= 참선인의 여덟 가지 자세, 禪 본래의 정해져 있는 여덟 가지 정신이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 정신에 충실해서 살기만 하면 깨달음은 별문제 아닙니다
①脫俗(탈속)= 俗氣(속기)를 벗어나야 됩니다.
참선하면, 일체가 俗氣를 벗어나야 됩니다. 깨닫지 못해도 우선 俗氣= 속된 생활부터 벗어나는 脫俗이 첫째입니다.
②簡潔ㆍ素朴(간결, 소박)= 簡素하고 素朴해야 됩니다. 너저분하게 속인보다 온갖 것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선과는 10만 8천리지요.
③變化(변화)= 變化가 있어야 됩니다. 어디에 고정되어 있고, 속박되어 있는 의식 또한 선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지요.
④孤高(고고)해야 됩니다. 하늘을 찌르는 孤高함이 있어야 선사라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실컷 수십 년 참선하다가 주지한다고 어수선하게 서성대면 선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⑤自然(자연)스러워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조작이 있고 억지가 있으면 안 됩니다.
⑥悠然(유연)하고요. 사람이 깊이가 있어야 됩니다.
⑦寂靜(적정). 고요할 때는 아주 고요해야 됩니다. 정적이 아닌 寂靜이라고해야 됩니다.
靜寂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것이 寂靜입니다. 禪寂不繫心은 이런 등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⑧不動(부동)이라고 해서 움직이지 않아야 된다. 이것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 가능한 것인데요.
흔히 八風不動(팔풍부동)이라고 합니다. 8풍= 利ㆍ衰ㆍ毁ㆍ譽ㆍ稱ㆍ譏ㆍ苦ㆍ樂(이쇠훼예칭기고락).
利ㆍ衰(이쇠) 利= 나에게 이로운 것과
衰= 손해 보는 것. 쇠퇴 하는 것. 내가 아주 잘 될 때와 내가 기울어질 때에 움직이지 않는 것.
毁ㆍ譽(훼예)= 면전에서의 칭찬과 비방에 움직이지 않는 것.
稱ㆍ譏(칭기)= 멀리서부터ㆍ다른 사람으로부터, 다른 데서 들려오는 비방과 일종의 칭찬이나 명성으로,
譏弄(기롱)이라고 해서 성토하고 헐뜯는 것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
苦ㆍ樂(고락)=고통과 즐거움에도 또한 움직이지 않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