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7권 4

Skunky 2023. 9. 4. 08:00

大智度初品中 佛土願釋論 第十三 卷第七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13. 초품 중 불토원(佛土願)을 풀이함 4

 

▶經. 能斷種種 見 纏 及 諸煩惱。

▷經. 능히 갖가지 見=견해(소견)와 纏=얽매임(10종 수혹)  온갖 번뇌를 끊어내다.

 

▶論. '見'有二種 一者常, 二者斷。

▷論. 견해=見에는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상견=常이요, 둘째는 단견(단멸견)=斷이라.

 

常見者 見五衆常 心忍樂, 斷見者 見五衆滅 心忍樂。一切衆生 多墮此二見中。

상견이라 함은 5중(오온)이 항상하다는 견해를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 즐기는 것이요, 단견(단멸견)이라 함은 5중(오온)이 사라져 없어지는=滅한다는 견해(죽게 되면 모든 것이 끊어져 업과 과보도 없어지게 되니, 인생을 맘대로 살아도 된다는 견해)를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여 즐기는 것으로, 일체의 중생은 대개   가지 견해에 떨어지기 마련이나,  

(일체중생은 대부분 이 두 가지 견해를 통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菩薩自斷此二 亦能除 一切衆生二見 令處中道。

보살은 스스로   가지의 견해를 끊었을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들의  가지 견해를 제거하여 주어서 중도(中道)에 처하게 하느니라.

 

復有二種見, 有見 無見。

다시  가지의 견해가 있으니, 유위법의=有見과 무위법의=無見이며,

 

復有三種見, 一切法忍 一切法不忍 一切法亦忍亦不忍。

다시 또  가지의 견해가 있으니, 일체법의 실상을 인정하여 받아들이는=一切法忍(일체법인)과 일체법의 실상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一切法不忍(일체법불인)과 일체법의 실상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여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는=一切法亦忍亦不忍(일체법역인역불인)이며, 

 

復有四種見, 世閒常 世閒無常 世閒亦常亦無常 世閒亦非常亦非無常。

다시  가지의 견해가 있으니세간이 항상하다는=世間常(세간상) 세간이 무상하다는=世間無常(세간무상) 세간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는= 世間亦常 亦無常(세간역상 역무상) 세간이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 않기도 하다는=世間亦非常 亦非無常(세간역비상 역비무상)이니,   

 

我及世閒有邊無邊 亦如是 有死後如去 有死後不如去 有死後如去不如去 有死後亦不如去亦不不如去。

나를 비롯한 세간의 끝이 있음과 끝이 없다는=世閒有邊無邊(세간유변 무변)는 견해도 이와 같아서, 죽은 뒤에 여실하게 갈 곳이 있다는 견해=有死後如去(유사후여거), 죽은 뒤에 갈 곳이 여실하지 않다는 견해=有死後不如去(유사후불여거), 죽은 뒤에 여실히 갈 곳이 있기도 하고 여실하게 갈 곳이 있지 않는다는=有死後如去不如去(유사후여거불여거)와 죽은 뒤에 여실히 갈 곳이 있는 것 아니요, 여실히 갈 곳이 있지 않는 것도 아닌=有死後亦不如去亦不不如去(유사후역불여거 역불불여거)이며, 

 

復有五種見, 身見 邊見 邪見 見取 戒取. 如是等種種諸見 乃至六十二見斷。

또한 다섯 가지의 견해가 있으니,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見取) 계견(戒見)으로, 이와 같은 갖가지 견해에서 나아가 62견에 이르기까지를 끊는 것이니라. 

 

다섯 가지의 잘못된 생각의 오견(五見)  

①신견(身見)=유신견(有身見, satkāya-dṛṣṭi, view of individuality, self view, identity view) 또는 살가야견(薩迦耶見), 오온(五蘊)이 일시적으로 화합한 신체를 영원히 존재하는 주체인 ‘나’로 생각하고, ‘나’에 따른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

②변견(邊見)= 변집견(邊執見,anta-grāha-dṛṣṭi, extreme views, extreme view)은 단(斷)과 상(常)의 두 극단[邊]에 집착하는 견해, 즉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말한다. 변집견은 줄여서 변견(邊見)이라고도 하며, 2가지 변견이라는 뜻에서 2변(二邊)이라고도 하며, 변견(邊見)을 번역하여 극단적인 견해라고도 하고 2변(二邊)을 번역하여 두 극단이라고도 하녀, 어느 한 극단에 사로잡혀 중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③사견(邪見, mithyā-dṛṣṭi, false view, evil view)= 인과의 도리,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연기법(緣起法)을 부정하는 견해이다.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인과법을 부정한다는 것은 4성제(四聖諦)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데, 4성제의 집제(集諦)와 고제(苦諦)는 서로 인(因)과 과(果)의 관계에 있으며 또한 도제(道諦)와 멸제(滅諦)도 서로 인(因)과 과(果)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아비달마구사론' 제19권에서는 사견이란 실유의 존재인 고 · 집 · 멸 · 도의 진리[諦] 즉 4성제에 대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견해라고 정의하고 있다

④견취(見取, drsti-parāmarśa, adherence to views, view of attachment to views), 견취견(見取見)는 그릇된 견해를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등을 일으킨 후 이를 고집하여 진실하고 뛰어난 견해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 견취는 저열한 것[劣] 즉 무루성혜[聖] 또는 성도[聖]에 의해 끊어지는 유루(有漏)를 뛰어난 것[勝] 즉 무루(無漏)라고 여기는 유루법이나 졸렬한 지견(知見)이나 졸렬한 일을 고집하고 스스로 훌륭한 견해라고 여기는 견해이다.

⑤계견(戒見)= 계금취(戒禁取, śīla-vrata-parāmarśa, adherence to observances and rituals, view of rigid attachment to the precepts)는 그릇된 계행(戒行), 그릇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따라, 인(因)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참된 해탈도(解脫道)가 아닌 것을 참된 해탈도라고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 말한다. 계금취견(戒禁取見) · 계금취결(戒禁取結) · 계금등취견(戒禁等取見) · 계도견(戒盜見) · 계도결(戒盜結) · 계취(戒取) · 계취견(戒取見) 또는 계취결(戒取結)이라고도 한다.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갠지즈강에 목욕하거나 불속에 뛰어드는 것 등의 유루행을 생천의 인이 된다고 보고 계착하는 견해이다.-위키

 

如是諸見 種種因緣生 種種智門觀 種種師邊聞。

이와 같은 모든 견해는 갖가지의 인연으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여러 가지 지혜로 열반문에 이를 수 있도록 관찰할 수 있게 하기도 하며, 여러 스승들로부터 듣게 되는 것이나,

 

如是種種相 能爲 種種結使作因 能與 衆生種種苦 是名'種種見'。'見'義 後當廣說。

이와 같은 갖가지의 모습은 능히 갖가지 번뇌=結使 이루게 하는 원인을 지어, 중생들에게 갖가지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이러한 것들을 갖가지 견해라 하며, 뒤에서 견해의 뜻를 자세히 설명하리라.

 

'纏'者 十纏, 瞋纏 覆罪纏 睡纏 眠纏 戲纏 掉纏 無慚纏 無愧纏 慳纏 嫉纏。掉 흔들 도, 慳 아낄 간 

얽매임=纏(전)이라 함은  가지 얽매임=十纏(십전) 말하나니,  성냄에 얽매임=瞋纏(진전)ㆍ죄를 숨김에 얽매임=覆罪纏(부죄전)ㆍ졸음에 얽매임=睡纏(수전)ㆍ잠에 얽매임=睡纏(면전)ㆍ희롱에 얽매임=戲纏(희전)ㆍ들뜸에 얽매임=掉纏(도전)ㆍ제 부끄러움 없음에 얽매임=無慚纏(무참전)ㆍ남부끄러움 없음에 얽매임=無愧纏(무괴전)ㆍ인색함에 얽매임=慳纏(간전)ㆍ질투에 얽매임=嫉纏(질전) 등이니라.

 

10전(十纏)= 10가지 수번뇌(隨煩惱) 혹은 수혹(隨惑)을 말하며, 이 10가지 번뇌들은 여러 번뇌들 중에서 특히 사람의 몸과 마음을 얽어매어 사물(事物) 혹은 사리(事理)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게 함으로써 선(善)을 닦는 것을 장애하기 때문에 '전(纏)'이라 한다. 또는 이들 10가지 번뇌는 여러 가지 악(惡)을 짓게 하여 유정을 얽어매어 생사의 옥(獄)에 가두어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서 '전(纏)'이라 한다. 10전 중 분(忿)과 부(覆)를 제외한 처음의 8가지를 8전(八纏)이라고도 한다.

瞋纏(진전)= 분(忿),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거나 격노하는 것에 얽매임

覆罪纏(부죄전)= 죄과를 은폐하여 숨김에 얽매임.

睡纏(수전)= 졸음의 얽매여서 혼침(惛沈)하여 무기력하고 흐릿함.

睡纏(면전)= 잠에 얽매여서 게으르고 흐리멍덩하고 몽매함.

戲纏(희전)=즐기며 노는 것에 대한 얽매임

掉纏(도전)=도거(掉舉). 불안정하고 산란하여 들뜸에 얽매임

無慚纏(무참전)=무참(無慚), 죄를 범하고도 스스로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부끄러움 없음에 얽매임.
無愧纏(무괴전)=무괴(無愧), 죄를 범하고도 남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남부끄러움 없음에 얽매임.

慳纏(간전)= 재물이나 교법에 매우 인색함에 얽매임.

嫉纏(질전)= 다른 이의 좋은 일에 대해 기뻐하지 못하고 질투에 얽매임.

 

復次 一切煩惱 結繞心故 盡名爲'纏'

또한 일체의 번뇌는 마음을 얽어매는 까닭에 모두 일컬어 얽매임=纏(전)이라 하느니라.

(마음이 수혹(隨惑)에 둘러싸이게 되는 까닭에 다 얽매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煩惱'者 能令心煩 能作惱故 名爲'煩惱'

번뇌라 함은 능히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혀서 고통을 자아내기 때문에 번뇌라 하나니, 

 

煩惱有二種 內著 外著

번뇌에  가지가 있으니, 내적인 집착=內著(내착, 육근의 착)과 외적인 집착=外著(외착, 육경의 착)이라. 

 

內著者 五見 疑 慢等, 外著者 婬 瞋等, 無明內外共。

내적인 집착=內著(내착, 육근의 착)이란 다섯 가지 견해=五見와 의심과 교만 등이요, 외적인 집착=外著(외착, 육경의 착)이란 음욕ㆍ성냄 등이며, 무명은 안팎의 양쪽에 속하느니라.

內著(내착, 육근의 착)= 다섯 가지의 잘못된 오견(五見)인 신견(身見)과 변견(邊見)과 사견(邪見)과 견취(見取)와 계견(戒見)과 의심, 교만 

 

復有二種結, 一 屬愛 二 屬見。

다시  가지의 묶임=結(결)이 있으니, 첫째는 애욕에 속하는=屬愛(속애)요, 둘째는 삿된 견해에 속하는=屬見(속견)이며,

 

復有三種 屬婬 屬瞋 屬癡。是名煩惱。

또한  가지가 있으니, 음욕에 속하는=屬婬(속음) 성냄에 속하는=屬瞋(속진) 어리석음에 속하는=屬癡(속치)라. 이러함을 '번뇌'라 하느니라.

 

纏者 有人言'十纏', 有人言'五百纏'.

얽매임=纏(전, 수번뇌 또는 수혹)이라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 가지 얽매임=十纏(십전)이 있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5백 가지 얽매임=五百纏(오백전)이 있다'고 하며,

 

煩惱名 一切結使, 結有九結. 使有七 合爲九十八結。

번뇌를 일체의 결사(結使)라고 하며, 마음이 묶인=結(결)에는 아홉 가지=九結(구결)이 있고, 마음이 부림을 당하는=使(사)에는 일곱 가지=七使(칠사)가 있으니, 모두 합하여 98결(結)이 되느니라.

 

如'迦旃延子阿毘曇'義中說, 十纏 九十八結 爲百八煩惱。

가전연자(가전연니자迦旃延尼子 Kātyāyaniputra) 바라문이 쓴 '아비담(논장論藏, Abhidharma)'에서 말하기를 '10전(纏)과 98결(結)이 합해져서 108번뇌가 된다'고 하였으며, 

가전연자(가전연니자迦旃延尼子 Kātyāyaniputra)는 바라문이며, 나형외도로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犢子兒阿毘曇'中 結使亦同纏 有五百。

독자아(犢子兒,Vātsīputra. 독자부Vajiputtiyā)의 '아비담(논장論藏, Abhidharma)'에서는 결(結)과 사(使)는 纏(전)과 같은 것으로 5백의 얽매임=纏(전)이 있다'고 하였으니, 

 

如是諸煩惱 菩薩 能種種方便 自斷 亦能巧方便 斷他人諸煩惱。

이와 같은 모든 번뇌를 보살은 능히 갖가지 방편으로 스스로 끊었으며, 또한 선교방편(善巧方便 Upāyauśalya)으로써 다른 사람의 번뇌들도 끊게 하느니라.

 

如佛在時 三人爲 伯 仲 季, 聞毘耶離國婬女 人名菴羅婆利, 舍婆提有婬女 人名須曼那, 王舍城婬女 人名優鉢羅槃那. 有三人各各聞 人讚三女人 端正無比, 晝夜專念 心著不捨 便於夢中夢與從事。伯 맏 백, 仲 버금 중, 가운데 중, 季 끝 계, 막내 계

부처님께서 생존하셨을 때, 삼형제가 있었은데, 伯(백)=큰형과 仲(중)=둘째 형과 季(계)=막내인 이들이 '비야리국(毘耶離國,바이샬리 Vaiśālī)에는 음녀 암라바리(菴羅婆利. 암라파리 āmrapali) 있고, 사바제(舍婆提, 슈라바스티, Śrāvastī)에는 음녀 수만나(須曼那,수마티 Sumati) 있으며, 왕사성(王舍城, 라자가하 Rājagṛha)에는 음녀 우발나반나(優鉢羅槃那, 우파라파나 Utpalavana) 있다' 얘기를 듣게 되었으며, 또한 세 사람은 각각 '  여인은 단정하기 견줄  없다'는 사람들의 칭찬하는 말을 듣고는, 밤낮으로 오로지  여자를 생각하여 잠시도 멈추지 못하다가, 마침내는 꿈속에서 그들을 만나 더불어 일을 치르 말았다.

 

覺已心念, 彼女不來 我亦不往 而婬事得辦' 因是而悟, '一切諸法皆如是耶?'

꿈을  뒤에 생각하기를, ‘저 여인이 오지도 않았고, 내가 가지 않았는데도 음사(淫事)를 이룰  있구나.’  일로 인하여 일체제법  이러하다는 것(꿈과 같음)을 깨닫게 되었거니와,

 

於是往到 颰陁婆羅菩薩所 問是事。颰陁婆羅答言 '諸法實爾 皆從念生' 如是種種 爲此三人 方便巧說 諸法空 是時三人 卽得阿鞞跋致。

이에 발타바라(颰陀婆羅, 바드라루치 Bhadraruci)보살을 찾아 가서 이 일을 물으니, 발타바라보살이 대답하기를, '모든 법이 실로 그러하여 모두가 마음(생각)에서 생겨나는 것이니라.' 하고는, 이와 같이 갖가지 선교한 방편으로 세 사람에게 일체 제법의 공함을 교묘히 설해 주니, 이에 세 형제는 곧 아비발치(阿鞞跋致, Avaivarti. 불퇴전, 염혜지, 아유월치)를 얻게 되었으니,

 

是諸菩薩亦復如是 爲諸衆生 種種巧說法 斷諸見 纏 煩惱。是名'能斷種種見 纏及諸煩惱'

여러 보살들 역시 이 같이 중생들을 위하여 갖가지 방편으로 모든 법을 교묘히 설 주어 모든 견해(사견)와 얽매임과 번뇌(수혹)를 끊어 주나니, 이것을 일컬어 '능히 갖가지 견해와 얽매임  번뇌를 끊게 한다' 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