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권 19

Skunky 2023. 8. 19. 06:00

大智度初品中 住王舍城釋論 第八 卷第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大智度 初品中 菩薩釋論 第八 卷第四

8. 초품 보살(菩薩) 풀이함-19

 

問曰(문왈) 若現在十方(약현재시방) 多有諸佛菩薩(다유제불보살) 今一切衆生(금일체중생) 罪惡苦惱(죄악고뇌) 何以不來度之(하이불래도지)?
묻나니, 만일 현재 시방세계에 많은 부처님과 보살이 계시다면, 지금 많은 중생이 죄악과 고통이 많거늘 어찌하여 와서 구제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衆生無量阿僧祇劫(중생무량아승기겁) 罪垢深厚(죄구심후)
, 雖有種種餘福(수유종종여복) 無見佛功德故(무견불공덕고) 不見佛(불견불). 如偈說(여게설);
답하나니, 중생들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죄의 때가 매우 깊기에, 비록 여러 가지 조그마한 복들이 남아 있을지라도 부처님을 만날 공덕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을 뵙지 못하는 것이니,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好福報未近(호복보미근) 衰罪未除卻(쇠죄미제각)

卻 물리칠 각. 却의 本字. 제각(除卻) : 무명(無明)을 없애고 삿된 견해를 물리치는 것.

좋은 복의 과보를 짓지 못하여 아직 가깝지 않고,

죄업이 쇠하도록 아직 무명을 없애지도 삿된 견해를 물리치지 못했기에

現在不能見(현재불능견) 大德有力人(대덕유력인)
지금 큰 위덕을 지니신 분이 계시나 알아 뵙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네.
 


大德諸聖人(대덕제성인) 心亦無分別(심역무분별)

큰 위덕의 모든 성인들 마음에는 분별이 없어서
慈悲一切人(자비일체인) 一時令欲度(일시령욕도)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푸사, 한꺼번에 제도하려 하시나니, 


衆生福德熟(중생복덕숙) 智慧根亦利(지혜근역리)

중생들의 복덕이 익어지고, 지혜와 근기도 영리하여 지면
若爲現度緣(약위현도연) 卽時得解脫(즉시득해탈)
(만약 이 생에 제도 될 인연이라면) 제도의 인연을 드러내어, 즉시에 해탈을 얻게 하시네. 

譬如大龍王(비여대용왕) 隨願雨衆雨(수원우중우)

마치 대용왕(Mahānāga)이 (비 내려달라는) 원을 좇아 많은 비를 내려 주듯이,
罪福隨本行(죄복수본행) 各各如所受(각각여소수)

죄와 복은 本行=본래의 행을 따름에, 지음을 따라 각각 받음이 같다네.


問曰(문왈) 若自有福德(약자유복덕) 自有智慧(자유지혜) 如是人佛能度(여시인불능도)

묻나니, 만약에 스스로에게 복덕이 있거나 스스로에게 지혜가 있는 이라면,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시고, 

 

若無福德智慧(약무복덕지혜) 佛不度(불불도) 若爾者(약이자) 自有福德智慧(자유복덕지혜) 不待佛度(불대불도)
만약에 복덕과 지혜가 없으면 부처님이 제도하시지 않으신다면, 스스로 복덕과 지혜가 있는 이는 부처님의 제도를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答曰(답왈) 此福德智慧(차복덕지혜) 從佛因緣出(종불인연출)

답하나니, 이러한 복덕과 지혜는 부처님의 인연을 따라 나오는 것이니, 

 

若佛不出世(약불불출세) 諸菩薩以十善因緣(제보살이심선인연) 四無量意(사무량의) 後世罪 福報(후세죄 복보) 種種因緣教道(종종인연교도)

만약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지 않으신다면 보살들이 10선(십선업)의 인연과 4무량의(사무량심, 자비희사, Catvāryapramāṇāni)과 후세 죄복의 과보와 갖가지 인연을 통해 교화하여 인도하시며, 

十善(십선. Daśakuśala)= 열 가지 선한 행위. 불살생(不殺生)ㆍ불투도(不偸盜)ㆍ불망어(不妄語)ㆍ불기어(不綺語)ㆍ불사음(不邪淫)ㆍ불악구(不惡口)ㆍ불양설(不兩舌)ㆍ불탐욕(不貪慾)ㆍ부진에(不瞋恚)ㆍ불사견(不邪見) 

 

若無菩薩(약무보살) 有種種經中說(유종종경중설) 人得此法(인득차법) 行福德因緣(행복덕인연)
만약 보살이 없을 때에는 여러 경전을 통한 말씀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법을 얻어 복덕의 인연을 행하는 것이다.


復次(부차) 人雖有福德 智慧(인수유복덕 지혜) 若佛不出世(약불불출세) 是世界中受報(세세계중수보) 不能得道(부능득도)

또한 사람에게 비록 복덕과 지혜가 있으나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지 않으셨다면, 이 세계에서 과보를 누리게 될지라도 도를 얻을 수가 없으니,

 

若佛出世(약불출세) 乃能得道(내능득도) 是爲大益(시위대익)

만약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신다면 능히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게 되므로 이것이 큰 이익이니라. 

 

譬如人雖有目(비인수유목) 日不出時(일불출시) 不能有所見(부능유소견) 要須日明(요수일명) 得有所見(득유소견) 不得言我有眼(불득언아유안) 何用日爲(하용일위)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에게 눈이 있어도 해가 뜨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나, 해가 떠서 밝아지면 보이는 것이 있는 것과 같으니, '나에게 눈이 있거늘 해가 무슨 필요가 있으리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같으니라. 


如佛說(여불설) '二因二緣(이인이연) 能生正見(능생정견) 一 從他聞法(일 종타문법) 二 內自如法思惟(이 내자여법사유)'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두 가지 인과 두 가지의 연에 의하여 능히 정견이 생겨나게 되는 것으로, 첫째는 남에게 법을 들음이요(다른 이를 통하여 참된 가르침=法을 들을 수 있게 되고), 둘째는 스스로가 속으로 법답게 사유함이니라.(6入)을 통해 스스로 한결같음=如라는 현상과 작용=法에 대해 사유(思惟)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福德事故(복덕사고) 能生善心(능생선심) 利根智慧故(이근지혜고) 能如法思惟(능여법사유) 以是故知從佛得度(이시고지종불득도)

일을 행함에 있어서 복덕을 쌓은 까닭에 능히 착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고, 예리한 근과 지혜로 능히 여법하게 사유할 수 있음에, 그러함으로 부처님에 의해 제도 받음을 알게 되는 것이니라.

 

如是等種種(여시등종종) 多有違錯(다유위착), 欲作般若波羅蜜論議故(작반야바라밀논의고) 不能復廣論餘事(부능부광론여사)

이와 같이 갖가지의 오해=違錯가 있으나, 이제 반야바라밀의 논의를 시작하고자 하기에 더 이상 자세히 다른 일을 거론하지 않고자 하노라.

大智度論卷第四終(대지도론 권제사종)

 

불교와 운명---흔히 운명을 타고난다고 한다면 그 운명을 하늘이 주는 것인가 부모님이 주는 것일까. 운명을 주는 주체도 없고, 주는 곳도 없다. 인간의 편에서 보아 어떤 높고 보이지 않는 힘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이룬 모든 성취와 업적을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지력이 거둔 성과로 본다. 
그리고 운명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운명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운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자신의 성격과 습관이 되풀이 되면서 운명도 만들어가고 있다. 이게 불교적 운명관이다. 즉, 운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자기노력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습관 에너지를 업습기(業習氣)라 한다. 문자 그대로 ‘행위로 향기를 스며들게 한다.’는 뜻으로 행위를 통해 형성되는 습관 에너지를 말한다. 어려서 엄마 젖을 먹을 때의 아가는 도둑놈 보고도 아빠라고 한다. 곧 천진불(天眞佛)이다. 그러던 천진불이 성장통을 겪으면서 업이 형성되고 업식(業識)은 그러한 기운을 남기면서 습관을 일으키기에 업습기(業習氣)라고 한다. 업습기는 나의 경험과 함께 가치관을 이루기도 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어나는 업식의 윤회는 삶의 줄거리를 이어가면서 내 운명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운명에는 상수(常數)와 변수(變數)가 있다. 상수는 전생에 지은 업이고. 변수는 현생의 업으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업을 말한다. 전생의 업은 키가 크다든지 작다든지 하는 유전인자(DNA)와 같아서 변할 수 없어 고정된 상수(常數)로서 작용하지만. 지금 우리가 짓는 업은 우리 의지에 의해 새로운 업을 만들어가므로 변수(變數)이다. 
그런데 운명보다 강한 것이 인간의 의지여서 우리 스스로 삶을 창조할 수 있다. 운명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진실한 운명의 변화는 ‘나’라고 하는 아상(我相)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베푸는 삶, 남을 도와주는 삶을 살면 그 응보가 자기에게 행운으로 돌아온다.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해서 남을 돕되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음덕(陰德)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내가 남에게서 가져 온 것은 때가 되면 나를 떠나 버리지만 남에게 준 것은 ― 베푼 것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그리하여 아상(我相)을 깬 삶,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 같이, 혼탁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바른 길을 가는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남을 사랑하고 베푸는 삶을 살 때, 그이의 앞엔 밝은 운명이 전개될 것이다.---→‘습관(習慣)과 불교’, 운명의 부정 참조. -작성가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