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4권 16
大智度初品中 住王舍城釋論 第八 卷第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大智度 初品中 菩薩釋論 第八 卷第四
8. 초품 중 보살(菩薩)을 풀이함-16
汝言(여언) '初阿僧祇劫中(초아승기겁중) 不知當作佛 不作佛(불지당작불 불작불),
묻나니, 그대가 말하기를 '첫 번째 아승기겁 동안에는 부처가 될지 안 될지 모르며,
二阿僧祇劫中(이아승기겁중) 知當作佛(지당작불) 不自稱說(불자칭설)
두 번째 아승기겁 동안에는 마땅히 부처가 될 것임을 알지만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三阿僧祇劫中(삼아승기겁중) 知得作佛 能爲人說(지득작불 능위인설)
세 번째 아승기겁 동안에는 부처가 될것임을 알고, 능히 남에게도 말한다'고 하였나니,
佛何處說是語(불하처설시어)? 何經中有是語(하경중유시어)? 若聲聞法 三藏中說(약성문법 삼장중설)? 若摩訶衍中說(약마하연중설)?
부처님께서는 어디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어느 경에 그런 말씀이 있는 것입니까? 성문의 가르침=法의 삼장에 그러한 말씀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마하연(대승)의 경에 있는 것입니까?
迦旃延尼子弟子輩言(가전연니자제자배언) '雖佛口三藏中不說(수불구삼장중불설) 義理應爾(의리응이)! '阿毘曇鞞婆沙(아비담비바사) 菩薩品(보살품)' 中如是說(중여시설
가전연니자(Mahākātyāyanīputra)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비록 부처님께서 삼장을 통해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으나 뜻으로 보아서는 이와 같다고 하였나니, 아비담비바사(아비달마비바사, Abhidharmavibhāṣā)의 보살품 가운데 이와 같이 설해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答曰(답왈) 摩訶衍中說(마하연중설) '初發心 是時知我當作佛(초발심 시시지아당작불)'
답하나니, 마하연(대승) 가운데 설하시기를 '처음 일체중생구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킨=初發心 때부터 내가 부처를 이루리라는 것을 안다'고 하셨으니,
如阿遮羅菩薩(여아차라보살) 於長手佛邊(어장수불변) 初發心時(초발심시) 乃至金剛座 處成佛道(내지금강좌 처성불도) 於其中閒(어기중간) 顚倒不淨心不生(전도불정심불생)
마치 아차라(Acala)보살이 장수부처님=長手佛에게서 처음으로 발심한 때부터 금강좌처에 이르러 불도를 이루기까지의 그 중간에 뒤바뀌거나 부정한 마음이 나지 않았던 것과 같으며,
如'首楞嚴三昧'中(여'수능엄삼매'중) 四種菩薩(사종보살) 四種受記(사종수기)
마치 수릉엄삼매(Śūraṃgamasamādhi)에서는 네 종류의 보살이 네 종류의 수기(vyākaraṇa)를 받는다고 한 것과 같으니,
有未發心而授記(유미발심이수기) 有適發心而授記(유적발심이수기) 有於前授記(유어전수기) 他人盡知(타인진지) 己身不知(기신불지) 有於前授記(유어전수기) 他人己身盡知(타인기신진지)
곧 아직 발심하지 않았으나 수기를 받는 경우, 발심했을 때에 맞춰 수기를 받는 경우, 이전에 수기를 받았건만 자신은 전혀 모르고 다른 사람은 다 아는 경우, 이미 수기를 받아서 자신도 다른 사람도 모두 아는 경우이니라.
汝云何言(여운하언) '於二阿僧祇劫(어이아승기겁) 知受記而不自稱說(지수기이불자칭설)?
그대는 어찌하여 '두 번째 아승기겁에서 수기를 받은 것임을 아나, 스스로가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가?
復次(부차) 如佛言(여불언) '無量阿僧祇劫(무량아승기겁) 作功德 欲度衆生(작공덕 욕도중생)' 何以故言(하이고언) 三阿僧祇劫(삼아스기겁)?' 三阿僧祇劫(삼아승기겁) 有量有限(유량유한)
또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공덕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 고 하셨는데 어째서 3아승기겁이라 하는 것입니까? 3아승기겁이라고 하면 한량이 있고 한도가 있는 것이니라.
問曰(문왈) 摩訶衍中(마하연중) 雖有此語(수유차어) 我亦不能都信(아역불능도신)
묻나니, 마하연(대승) 가운데 비록 그런 말씀이 있을지라도, 나는 모두 믿을 수 없습니다.
答曰(답왈) 是爲大失(시위대실)! 是佛眞法(시불진법) 佛口所說(불구소설) 汝無反復(여무반복)! 汝從摩訶衍中出生(여종마하연중출생) 云何言 我不能都信(운하언 아불능도신)?
답하나니, 그러함이 큰 실수이니라. 이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니, 그대는 믿을 수 없다고 반복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그대는 마하연(대승) 가운데에서 났거늘 어째서 '나는 전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復次(부차) 摩訶衍論議(마하연논의) 此中應廣說(차중응광설)
또한 마하연(대승)의 논의는 이(마하연경) 가운데에서 널리 설명하고 있으며,
復次(부차) 說是三十二相 業因緣(설시삼십이상 업인연) 欲界中種(욕계중종) 非色無色界中種(비색무색계중종)
또한 '이 32상 업의 인연은 욕계에서 심을 수 있는 것으로, 색계나 무색계에서 심는 것이 아니다'고 말씀하셨으니,
無色界中(무색계중) 以無身無色(이무신무색) 是三十二相(시삼십이상) 是身莊嚴故(시신장엄고) 於中不得種可爾(어중불득종가이) 色界中 何以不得種(색계중 하니불득종)?
무색계에서는 몸도 보일 상도 없기에 32상으로 몸을 장엄할 수 없으므로 그곳에서는 심을 수 없다 함은 맞는 것이나, 색계에서야 어찌 심지 못한다고 하겠는가?
色界中(새계중) 大有諸梵王(대유제범왕) 常請佛初轉法輪(상청불초전법륜) 是智慧淸淨(시지혜청정) 能求佛道(능구불도) 何以言(하이언) 不得種三十二相因緣(불득종삼십이상인연)?
색계에는 여러 범천왕이 있어, 항상 부처님께 최초의 법륜을 굴려주실 것을 청하나니, 이는 지혜가 청정하므로 능히 불도를 구하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32상의 인연을 심지 못한다고 하는 것인가?
又言(우언) '人中得種 非餘道(인중득종 비여도)'
또한 '인간 가운데에서는 심을 수 있지만, 다른 길에서는 심지 못한다'고 말하였으나,
如娑伽度龍王(여사가도용왕) 十住菩薩(십주보살) 阿那婆達多龍王(아나바달다용왕) 七住菩薩(칠주보살) 羅睺阿修羅王(나후아수라왕) 亦是大菩薩(역시대보살) 復何以言(부하이언) '餘道不得種 三十二相因緣(여도불득종 삼십이상인연)?'
사가도(사가라 Sāgara-nāgarāja) 용왕은 10주 보살의 지위 (관정주)이요, 아나바달다(아나바타 Anavatapta-nāgarāja)용왕은 7주 보살(불퇴전 지위)이요, 나후아수라(라후아수라, Rāhu asurarāja)왕 역시 대 보살이거늘 어찌하여 다른 갈래에서는 인연을 심지 못한다고 하는 것인가?
사가도(娑伽度, Sāgara-nāgarāja)= 사가라(娑伽羅)용왕 사가라, 사갈라(娑伽羅, 沙竭羅, Sagara, Shakara), 바다의 용왕으로 해상용왕으로, 용왕의 셋째 딸이 8세에 부처님의 도(佛道)를 깨우쳐, 남자(男子)로 변(變)해 성불하였다고 전한다.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 Anavatapta-nāgarāja)= 대 설산(히말라야산맥) 북쪽에 있는 거대한 못 아나와땁따(Anavatapta)에 살면서 맑은 물을 내려보내 세상을 비옥하게 하는 용왕이다. 아나와땁따 호수에 산다고 용왕의 이름 또한 아나와땁따이다. 여기서 아나와땁따는 뜨거워지지 않는 이라는 뜻인데, 항상 차갑고 맑은 물이 넘실거리는 히말라야산맥 속의 대호(大湖)를 잘 표현한 명칭이다. 아나와땁따를 한자로 음차하여 아뇩달(阿耨達) 또는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라 한다. 그래서 한자로 아나바달다 용왕이라고도 하고 아뇩달 용왕이라고도 한다. 용왕이 사는 호수(湖水)를 한자로는 못 지(池) 자를 붙여서 아뇩달지(阿耨達池)라고 부른다. 여기서 아뇩달지는 카일라스산 남쪽에 면한 거대한 호수 마나싸로와르(Manasarovar)를 가리킨다. 뇩(耨) 자에는 누라는 음도 있으므로 아누달 용왕, 아누달지라고도 쓰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뇩이라고 읽는다. 뜨거워지지 않는다. 는 뜻인 아나와땁따를 열뇌(熱惱)가 없다고 해석하여 아나바달다 용왕은 다른 용들이 겪는 네 가지 큰 열뇌(번뇌)가 없다고 풀이한 구절이 석보상절에 있다.-천석
나후아수라(羅睺阿修羅, Rāhu asurarāja)=일식과 월식을 일으킬 수 있는 아수라. 아수라(阿修羅)는 ‘숨, 생명’을 뜻하는 ‘아수(asu)’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팔부신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나 인도에서는 천계의 신인 ‘수라(sura)’가 힌두교의 주신(主神)들과 대립하는 악신(惡神)이라는 평판이 생겨나자 부정을 뜻하는 ‘아(a)’를 붙여서 아수라(asura)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수라는 삼면육비(三面六臂),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지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비천(非天)ㆍ비류(非類)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육도윤회하는 중생계에서는 삼선도(三善道)에 속하기도 하고, 오취설(五趣說)에서는 아귀와 축생과 같이 악도(惡道)에 포함시키는 사례도 있습니다.
수라의 세계는 싸움이나 큰 혼란에 빠진 곳이나 그 속에서 사는 존재, 또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인간계에서도 갈등이 많고, 다투고 싸움이 빈번한 난장판이나 탐진치 삼독심이 극심하게 표출되고, 번뇌망상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하는 경우 아수라장이라고 말합니다.-안개마을
汝言(여언) 人中閻浮提種(인중염부제종) 鬱怛羅曰 不可種(울달라왈 불가종)
또한 그대는 인간 가운데 염부제(Jambudvīpa)에서만 심을 수 있고, 울달라(울달라월 Uttarakuru)에서는 심지 못한다고 말하나,
염부제(閻浮提. Jambudvīpa)=인도신화에 나오는 수미산의 사방에 위치한 네 육지 중 남쪽에 위치한 육지를 말한다. 염부(閻浮)는 잠부(Jambu)나무를 의미하고 제(提)는 섬·육지를 의미하는 범어 dvīpa의 음차이다. dvīpa의 뜻을 따라 염부주(閻浮州)라고도 하며, 다른 음차어로는 염부리(閻浮利), 섬부제(贍部提), 염부제비파(閻浮提鞞波)가 있다. 그러므로 염부제는 ‘잠부나무가 자라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잠부나무는 대력 15m 정도 크기의 나무로 인도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데 강가 주변에 많이 서식한다. 염부제는 원래 히말라야 남쪽의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불교의 우주관에 나타난 여러 세계 중 인간이 사는 세계를 의미하는 말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잠부나무가 자라는 강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사금(砂金)을 염부단금(閻浮檀金)이라 하는데, 이에 따라 염부제를 좋은 금이 나는 땅이라는 의미의 승금주(勝金州), 호금토(好金土)라고 한역(漢譯)하기도 했다. 또 수미산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염부제(南閻浮提), 남염부주(南閻浮州),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도 한다.-다움
울달라(鬱怛羅. Uttarakuru)= 수미산을 둘러싼 4대주 가운데 하나. 수미산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장방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북구로주(北俱盧洲)라고도 한다.
有義(유의) 彼中人無吾我(피중인무오아) 著樂 不利根故(착락 불리근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중 울달라(수미산의 북쪽, Uttarakuru) 사람들은 '나'라는 주체=吾我가 없이 즐거움에 집착하고, 영리한 근기가 아닌 까닭이라 하여도
劬陁尼(구타니) 弗婆提二處(불바제이처) 福德 智慧(복덕 지혜) 壽命勝閻浮提(수명승염부제) 何以不得種(하이불득종)?
구타니(수미산의 서쪽, para-Godānīya)와 불바제(수미산의 동쪽, Pūrvavideha)의 두 곳은 복덕과 지혜와 수명이 염부제보다 수승하거늘 어찌하여 심지 못한다 하는가?
구타니(劬陀尼. Apara-Godānīya) 수미산을 둘러싼 4대주 가운데 하나. 수미산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우화주(西牛貨州)라고도 한다.
불바제(弗婆提. Pūrvavideha) 수미산을 둘러싼 4대주 가운데 하나. 수미산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반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동승신주(東勝身州)라고도 한다.
復次 汝言(부차 여언) 一思種一相(일사종일상)
또한 그대가 말하기를, 한 생각(사유)으로 한 32상호의 인연을 심는다고 하나,
是心彈指頃 六十生滅(시심탄지경 육십생멸) 一心中不住(일심중불주) 不能分別(불능분별) 云何能種大人相(운하능종대인상)?
이 마음은 彈指=손가락을 튀기는 사이에 60번의 생멸(60 종류의 생각)을 하는 것이라, 한 생각의 사이에 머무를 수ㄷㅎ 없고 분별도 못하거늘 어떻게 능히 대인상을 심는다고 하는가?
此大人相(차대인상) 不應不了 心得種(불응불료 심득종) 以是故(이시고) 多思和合(다사화합) 能種一相(능종일상)
이러한 대인의 상은 깨닫지 못한 마음으로는 심을 수가 없으므로 여러 생각이 화합하여야 한 상호를 심게 되는 것이니라.
(대인(大人)의 상(相)이란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져서 삿된 견해를 지니지 않아야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에 대해 명료한 마음으로 보리(菩提)의 모습인 혜명(慧命)을 심어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게 되는 이러한 까닭으로, 많은 사유를 통해 혜명(慧命)이 심어지게 되어 하나의 상호(相好)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如重物一人不能擔(여중물일인불능담) 必須多人力(필수다인력)
마치 무거운 물건을 한 사람의 힘으로서는 멜 수 없으니, 반드시 여러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如是種相(여시종상) 要得大心(요득대심) 多思和合(다사화합) 爾乃得種(이내득종) 以是故(이시고) 名百福相(명백복상),
이 상호의 인연을 심는 것도 반드시 대심과 여러 생각이 화합해서 비로소 심을 수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백복상이라 하나니,
百大心思 種福德(백대심사 종복덕) 是名百福相(시명백복상) 不應一思 種一相(불을일사종일상)
백 가지의 대심과 사유로 이 복덕을 심는 까닭에 백복상이라 하는 것으로, 하나의 생각(사유)으로 한 모습을 심는 것이 아니니라.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는 마음은 불지혜(佛智慧)인 보리(菩提)와 어우러지게 되는 마음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
餘事尚不得(여사상불득) 一思種一事(일사종일사) 何況百福相(하황백복상)!
다른 일(세상의 일)에 있어서도 한 생각으로 한 가지의 일을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백복상이겠는가!
何以故言(하이고언) '釋迦文尼菩薩(석가모니보살) 心未純淑(심미순숙) 弟子心純淑(제자심순숙), 彌勒菩薩心純淑(미륵보살심순숙) 弟子心未純淑(제자심미순숙)?' 是語何處說(시어하처설)?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석가모니보살의 마음은 아직 순수하게 맑아지지 못하였는데, 그의 제자들의 마음이 순수하게 맑아질 수 있으며, 미륵보살은 마음은 순수하게 맑아졌으나, 그 제자들의 마음은 순수하게 맑아지지 못하였다 할 수 있는가? 또한 이러한 말씀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三藏中(삼장중) 摩訶衍中無是事(마하연중무시사) 此言自出汝心(차언자출여심)
삼장(tripiṭaka) 가운데에서도 마하연(대승)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말은 없나니, 이 말은 아마 그대의 짐작에서 나온 것이리라.
汝但見釋迦文尼菩薩(여단견석가모니보살) 於寶窟中(어보굴중) 見弗沙佛(견불사불) 七日七夜(일일칠야) 以一偈讚(이일게찬)
그대는 다만 석가모니(Sakyamuni) 보살이 보굴 안에서 불사불(Buddha Puṣya)을 뵈옵고 7일 7야 동안 한 게송으로써 찬탄한 것만 보았을 뿐이나,
彌勒菩薩(미륵보살) 亦種種讚弗沙佛(역종종찬불사불) 但'阿波陁那經'中不說(단아파타나경중불설) 汝所不知(여소부지)
미륵(Maitreya) 보살도 갖가지 방법으로 불사불(Buddha Puṣya)을 찬탄하였으나, 다만 아바타나경(Avadāna-sūtra)에 말씀되어 있지 않아서 그대가 알지 못함은
無因緣故(무인연고) 汝便謂(여편위) '彌勒弟子心 未純淑(미륵제자심 미순숙)' 如是皆爲違失(여시개위위실)!
인연이 없기 때문인, 그대는 문득 말하기를 '미륵(Maitreya)의 제자들은 마음이 순수하게 맑아지지 못했다'고 한, 이러한 것들이 모두 그릇된 실수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