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3권 1
大智度初品中 住王舍城釋論 第五卷 第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5. 초품 중 왕사성(王舍城)에 머무시다를 풀이함-1
왕사성(王舍城, Rājagṛha)= 고대 인도의 사대 강국 중의 하나인 마가다국의 수도이며 당시로서는 가장 번성하고 가장 새로운 경향의 도시였다. 이 도시는 구(舊)왕사성과 신(新)왕사성의 둘로 나뉘어 있고, 구도(舊都)는 산성(山城)이라 불리고 현재는 인도 최고의 석조건축으로서 그 자리가 남아 있을 뿐이다.
經. 住王舍城(주왕사성) 왕사성에 머무시다.
論. 今當說(금당설) 이제부터 설명하리라.
◎'住=머묾'의 해석
問曰(문왈) 何以不直說(하이불직설) 般若波羅蜜法(반야바라밀법)
而說“佛住王舍城”(이설 '불주왕사성')?
묻나니, 어찌하여 바로 반야바라밀의 법(가르침)을 바로 말하지 않고, 부처님께서 왕사성(Rājagṛha)에 머무셨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說方 時 人 令人心生信故(설방 시 인 영인심생신고)
답하나니, 장소(위치)=方과 때와 사람을 말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의 마음이 일어나게끔 하고자 하기 때문이니라.
云何名“住”(운하명 '주')? 그렇다면 무엇을 머무심=住라고 하는 것입니까?
四種身儀(사종신의) 坐 臥 行 住 是名住(좌 와 행 주 시명주)
몸의 네 가지 거동이니, 즉 앉고 눕고, 다니고 멈추는 것을 머문다고 하느니라.
(4종(種)으로 된 몸의 위의(威儀)가 있나니, 앉고 눕고 걷고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으로 이러한 뜻에서 “왕사성(王舍城 Rājagṛha)에 머무시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又以怖魔軍衆(우이포마군중) 自令弟子(자령제자)
歡喜入 種種諸禪定故(환희입 종종제선정고) 在是中住(재시중주)
또한 마군의 무리를 두려워 떨게 하고, 제자들을 기쁘게 해서 갖가지 선정에 들게 하고자 여기에 머무시는 것이었느니라.
復次 三種住(부차 삼종주) 天住 梵住 聖住(천주 범주 성주)
또한 三種住=세 가지 머무름이 있으니, 하늘의 머무름=天住(divyavihāra)ㆍ범왕의 머무름=梵住(brāhma-vihāra.)ㆍ성인의 머무름=聖住(ārya-vihāra)이니,
六種欲天住法 是爲天住(육종욕천주법 시위천주) 6욕천에 머무는 것은 하늘의 머무름이요,
(욕계(欲界)의 여섯 하늘에 머무는 현상과 작용(法)은 하늘의 머묾이요,)
梵天等乃至 非有想 非無想天住法(범천등내지 비유상 비무상천주법)
是名梵住(시명범주)
범천에서 비유상비무상천에 이르기까지 머무는 것은 범왕의 머무름이요,
(범천을 비롯하여 무색계의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想處天)에까지 머무는 현상과 작용(法)은 “범천의 머묾”이라 하며, )
梵天(범천, Brahma sahāpati) 인도사상에서 만유의 근원인 브라만을 신격화 한 것으로, 불교에서는 이 신이 사는 하늘을 초선(初禪)의 경지에 대비시킨다.
인도 후기 베다 시대의 힌두교 주요 신의 하나였으나 종파적 신앙이 대두됨에 따라 브라마는 점차 비슈누와 시바에게 가려지게 되었다.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서 중성(中性)인 브라만과 달리 남성으로 표현되는 브라마는 베다의 창조신 프라자파티와 연관되어 있고, 뒤에는 프라자파티와 동일시되었다. 브라마는 황금알에서 태어나 땅과 그 위의 모든 것을 차례로 창조했다고 한다. 후대의 종파적 신화들에서는 그가 비슈누의 배꼽에서 피어난 연꽃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고전 시대에 다양한 종파의 전통을 통합하려 했던 시도는 비슈누·시바·브라마를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신의 세 형태로 생각한 삼신일체 사상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7세기에 정통 힌두교를 내세우는 스마르타교가 브라마를 빼고 다른 다섯 신을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권능을 상실했다. 오늘날 브라마만을 숭배하는 교단이나 종파는 없고, 그에게 봉헌된 사원도 거의 없다. 유일한 사원이 아즈메르(라자스탄 주) 근처 푸슈카르에 있다. 하지만 시바와 비슈누를 모시는 사원에서는 반드시 브라마 신상을 모시고 있다. 브라마는 예술 작품에서 흔히 4베다(인도 최초의 성전), 4유가(세계의 1순환기를 4단계로 구분한 것 중의 한 시대)와 4바르나(사회계급)를 상징하는 4개의 얼굴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4개의 팔에 제의도구, 염주, 책을 든 채 연화좌나 그의 탈 것인 백조(haṃsa) 위에 앉거나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부인들인 사비트리와 사라스바티가 같이 등장하기도 한다. 회화에서는 누런 피부색에 흰 옷과 화환을 걸친 모습으로 묘사된다.
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 naivasaṃjñānâsaṃjñāyatanaṃ)= 무색정의 마지막 경지로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경지’라는 뜻이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도 한다.
諸佛 辟支佛 阿羅漢住法(제불 벽지불 아라한주법) 是名聖住(시명성주)
부처님ㆍ벽지불ㆍ아라한들이 머무는 것은 성인의 머무름이니라.
(모든 부처님을 비롯한 벽지불 아라한 등이 머무는 현상과 작용(法)은 “성인의 머묾”이라고 부릅니다.)
於是三住法中(어시삼주법중) 住聖住法(주성주법) 憐愍衆生故(연민중생고)
住王舍城(주왕사성)
이 세 가지 머무름 중에서 성인의 머무름에 머무르셨으니,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까닭에 왕사성에 머무신 것이니라.
復次 布施持戒善心三事(부차 보시지계선심삼사) 故名天住(고명천주)
또한 보시ㆍ지계ㆍ착한 마음의 세 가지를 갖춘 까닭에 하늘의 머무름이라 하나니,
慈悲喜捨四無量心(자비희사사무량심) 故名梵住(고명범주)
자ㆍ비ㆍ희ㆍ사의 4무량심(catur apramāṇacitta)을 갖춘 까닭에 깨끗한 하늘에 머무름=梵住(범왕의 머무름)이라 하고,
空 無相 無作(공 무상 무작) 是三三昧 名聖住(시삼삼매 명성주)
聖住法 佛於中住(성주법 불어중주)
공ㆍ무상ㆍ무작의 세 가지 삼매를 성인의 머무름이라 하나니, 부처님은 성인의 머무름에 머무셨나니라.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세 가지 삼매를 통해 중도(中道)에 머무는 것을 “성인의 머묾”이라 부르며, 성인(聖人)으로 머물게 되는 현상과 작용(法)을 통해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머물게 되셨던 것입니다.)
復次 四種住(부차 사종성) 天住梵住聖住佛住(천주범주성주불주)
三住 如前說(삼주 여전설)
또한 네 가지 머무름이 있으니, 하늘의 머무름ㆍ범왕의 머무름ㆍ성인의 머무름ㆍ부처의 머무름=佛住(buddhavihāra)이니,
세 가지 머무름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佛住者(불주자) 首楞嚴等 諸佛無量(수능엄등 제불무량)
三昧 十力 四無所畏 十八不共法(삼매 십력 사무소외 십팔불공법)
一切智等 種種諸慧(일체지등 종종제혜) 及八萬四千法藏度人門(급팔만사천법장도인문)
부처의 머무름이란 수릉엄 등 부처님들의 한량없는 삼매ㆍ10력ㆍ4무소외ㆍ18불공법ㆍ일체지를 비롯한 모든 지혜와 8만 4천 가지 법장으로 사람들을 제도하는 법문이니라.
수능엄(首楞嚴) : “능엄(楞嚴)”이란 산스크리트어 “수람가마(suramgama)”의 의역으로 뜻은 “장벽(障壁)을 허물다. 장애(障碍)를 무너뜨리다.”라는 뜻입니다. 수능엄(首楞嚴)은 “중생이 거친 마음(覺)과 오욕(五慾)에 물들어 생각이 산란한 마음(觀)이라는 장벽을 물리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수능엄(首楞嚴)의 수능(首楞)이란 모든 것에 구경(究竟)임을 뜻하고, 엄(嚴)이란 견고(堅固)함을 뜻하며, 이와 같이 모든 것에 구경이요 견고한 것이 수능엄이니, 이것은 바로 불성(佛性), 여래장성(如來藏性) 등을 의미합니다. 또는
수릉엄(首楞嚴, śūrañgama)=부처가 얻는 삼매의 이름으로, 건상(健相), 건행(建行), 일체사경(一切事竟)으로 의역하기도 함.
4무소외(無所畏, catur vaiśāradya)= 무외(無畏, vaiśāradya)란 법을 설함에 있어서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말한다. ①‘나는 정등각자이다’라고 알아, 현실세계를 고제(苦諦)라고 명언함에 두려움이 없음(正等覺無畏, samyaksambuddha-vaiśāra- dya), ②‘나의 번뇌는 다했다’라고 알아,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모두 단절했다고 명언함에 두려움이 없음(漏永盡無畏, āsravakaṣaya-vaiśāradya), ③‘나는 길을 장애하는 원인인 번뇌를 설했다’라고 알아, 끊어야 할 번뇌를 설함에 두려움이 없음(說障法無畏, antarāyikadharmākhyāna-vaiśāradya), ④‘나는 제자들을 위해 출리의 길을 설했다’라고 알아, 번뇌의 단멸에 이르는 길을 설함에 두려움이 없음(說出苦道無畏, nairyāṇikapratipadākhyāna-vaiśāradya)이다.
18불공법(不共法, aṣtādaśa āveṇika buddha-dharma) 부처님에게만 있는 열여덟 가지 뛰어난 특징이다. 곧 10력(力)ㆍ4무외(無畏)ㆍ3념주(念住)ㆍ대비(大悲)의 열여덟 가지를 말한다.
如是等種種 諸佛功德 是佛所住處(여시등종종 제불공덕 시불소주처) 佛於中住(불어중주)
이와 같은 갖가지 부처님의 공덕이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곳이니, 부처님께서는 이 가운데에 머물러 계시는 것이니라.
略說“住”竟(약설'주'경) “王舍城”者('왕사성'자)
왕사성(Rājagṛha)에 머무시다.”를 간략하게 설명하여 마치노라.
◎王舍城의 해석
問曰(문왈) 如舍婆提 迦毘羅婆(여사바제 가비라바) 波羅柰大城(바라내대서)
皆有諸王舍(개유제왕사) 何以故 獨名此城爲王舍(하이고 독명차성위왕사)?
묻나니, 사바제(Śrāvastī, 슈라바스티)나 가비라바(Kapiavastu, 카필라바스투)나 바라내(Vārāṇasi, 바라나시)등의 성에도 모두 왕들이 사는 성=王舍가 있거늘 어찌하여 이 성만을 왕사라 하는 것입니까?
사바제(舍婆提, Śrāvasti)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舍衛城) 혹은 사위국(舍衛國)이라고도 한다. 석존께서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대 인도의 코살라(Kosala)국에 속했던 도시이다. 불교 발생 당시에는 바사닉(波斯匿)왕 아래에서 정치ㆍ경제의 중심지로 번영했지만 코살라 왕국이 멸망하자 쇠퇴했다. 사바제성(舍婆提城)ㆍ시라발제(尸羅跋提)ㆍ실라벌실저(室羅伐悉底)ㆍ실라벌국(室羅筏國)ㆍ실라발성(悉羅跋城)이라고도 한다.
가비라바(迦毘羅婆, Kapilasastu)= 석존의 탄생지이다.
바라내(波羅奈, Vārāṇasī)= 바라나시(Bārāṇasī)의 음사. 송(宋) • 원(元) • 명(明)의 세 판본에는 ‘나(奈)’로 되어 있으며, 빨리어 원음에 비추어 볼 때 ‘나(奈)’로 표기하는 것이 더 원음에 가까우며, 붓다시대 바라나시(지금의 베나레스)는 까시(Kāsi)국의 수도였다. 따라서 바라내국(波羅㮈國)으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임.
答曰(답왈) 有人言(유인언) 是摩伽陁國王有子(시마가타국왕유자)
一頭 兩面 四臂(일두 양면 사비)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마가다국의 왕이 아들을 낳았는데 머리는 하나에 얼굴은 둘, 팔은 넷이었으니,
時人以爲不祥(시인이위불상),王卽裂其身首(왕즉열기신수) 棄之曠野(기지광야)
사람들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왕이 곧 그 몸과 머리를 쪼개어 광야에 버리니,
羅剎女鬼名梨羅(나찰여귀명이라) 還合其身而乳養之(환합기신이유양지)
리라(Līlā)라는 나찰녀(羅刹女鬼, 나찰여귀, rakṣasī)가 그 몸을 모아서, 젖을 먹여 길렀으니,
나찰녀(羅刹女鬼, rakṣasī)= 나찰사(羅刹私)라고도 함
後大成人(후대성인) 力能幷兼諸國(역능병겸제국) 王有天下(왕유천하)
取諸國王 萬八千人 置此五山中(취제국왕 만팔천인 치차오산중)
나중에 장성하여 성인이 된 뒤, 그 힘이 여러 왕을 합해 놓은 것과 같았으니, 그는 천하를 차지하고는 여러 나라의 왕 1만 8천 명을 모아 이들을 다섯 산으로 둘러싸인= 五山 가운데에 두고는
五山= 왕사성은 백선산(白善山, Paṇḍava)ㆍ영취산(Gṛdhakūṭa, Gijjhākūṭa)ㆍ부중산(負重山, Vebhāra)ㆍ선인굴산(仙人堀山, Isigili)ㆍ광보산(廣普山, Vepulla)의 다섯 산에 둘러싸여 있다.
以大力勢 治閻浮提(이대역세 치염부제) 閻浮提人(염부제인)
因名此山 爲王舍城(인명차산 위왕사성)
큰 세력으로 염부제를 다스렸으니, 염부제의 사람들은 이러한 까닭에 이 다섯 산의 가운데 산을 왕사성이라 하며,
復次 有人言(부차 유인언) “摩伽陁王 先所住城(마가타왕 선소주성)
城中失火 一燒一作(성중실화 일소일작) 如是至七(여시지칠)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마가다의 왕이 먼저 살던 성이 있었는데, 성이 불에 타면 다시 짓고 또한 타면 다시 짓기를 일곱 번에 이르니,
國人疲役 王大憂怖(국인피역 왕대우포) 集諸智人 問其意故(집제지인 문기의고)
有言 宜應易處(유언 의응이처)
나라 사람들은 노역으로 몹시 지치었으니, 왕이 매우 걱정하여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아 놓고 화재의 이유와 그들의 생각을 물으니, 어떤 사람이 ‘터를 옮기시오’라고 말하여,
王卽更求住處(왕즉갱구주처) 見此五山周帀如城(견차오산주잡여성)
卽作宮殿於中止住(즉작궁전어중지주) 以是故名王舍城(여시고명왕사성)
왕은 곧 살 곳을 다시 구하다가 이 다섯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성과 같음을 보고는 여기에 궁전을 짓고 살기 시작하니, 이 까닭에 왕사성이라 하게 되었다고 하기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