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권 16

Skunky 2023. 7. 12. 08:00

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4. 초품 중 바가바(婆伽婆)를 풀이함(大智度初品中婆伽婆釋論第四)-3

 

如諸佛世尊(여제불세존) 若人以刀 割一臂(약인이도 할일비) 臂 팔 비

하지만 불세존 같은 분들은 가령 어떤 사람이 칼을 들어 한쪽 팔을 끊어내고, 

 

若人以栴檀香泥 一臂(약인이전단향니 일비) 如左右眼((여좌우안)

心無憎愛(심무증애) 是以永無殘氣(시이영무잔기)

어떤 사람은 전단향을 한쪽 팔에 바를지라도, 마치 눈의 좌우가 같아서 마음에 애증이 없나니, 이러함은 영원히 습기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니라.

(이러함은 무의식으로 갈무리된 불선업(不善業)의 버릇과 무의식이라는 응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栴闍婆羅門女 木杅謗佛(전사바라문여 목잔방불) 於大衆中言(어대중중언)

杅 잔 우, 누를 우, 

전사(Ciñcā, 전차) 바라문의 딸이 나무통=木杅를 배에 감추고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을 비방하며 말하기를,

 

汝使我有娠 何以不憂(여사아유신 하이불우)? 娠 아이 밸 신

與我衣食(여아의식) 爲爾無羞(위이무수) 誑惑餘人(광혹여인) 羞 부끄러울 수

'그대는 나를 임신시켜 놓고도 어찌하여 나에게 옷과 음식을 줄 생각을 하지 않고 걱정도 하지 않는가? 그대는 수치를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홀리어 속이는 사람이구나.'

 

是時 五百婆羅門師等(시시 오백바라문사등) 皆擧手唱言(개거수창언)

是 是 我曹知此事(시 시 아조지차사)

이 때에 오백 명의 바라문 스승=師들이 모두 손뼉을 치면서 노래하듯 말하기를,
'맞다 맞아, 우리들은 벌써부터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是時 佛無異色(시시 불무이색) 亦無慚色(역무참색) 此事卽時彰露(차사즉시창로)

이러함에도 부처님께서는 얼굴에 다른 빛이 없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부끄러운 기색조차 없으셨으니, 곧 이 일이 거짓임이 밝혀져서,

 

地爲大動 諸天供養(지위대동 제천공양) 散衆名華 讚歎佛德(산중명화 찬탄불덕)

佛無喜色(불무희색)

땅이 크게 진동하고, 모든 하늘 무리들이 갖가지 꽃을 흩어 공양하고, 갖가지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였으나 부처님께서는 기뻐하는 빛조차 없어셨느니라.

 

復次 佛食馬麥(부차 불식마맥) 亦無憂慼(역무우척) 麥 보리 맥, 慼 근심할 척, 

또한 부처님께서는 馬麥=말이 먹는 보리를 잡수셨어도 애태우거나 속상해하지 않으셨거니와 

 

天王獻食 百味具足(천왕헌식 백미구족) 不以爲悅 一心無二(불이위열 일심무이)

獻 바칠 헌,

천왕이 백 가지 맛을 구족한 음식을 올렸으나 기뻐하지 않으셨으니, 한 마음뿐이요 두 마음이 없었던 것이니라.

 

如是等種種飮食(여시등종종음식) 衣被 臥具 讚呵(의피 와구 찬가)呵 꾸짖을 가, 

輕敬等種種事中(경경증종종사중) 心無異也(심무이야)

이와 같이 갖가지 음식과 의복, 와구(침상)로 찬탄하거나, 나무라거나, 멸시하거나, 공경하는 등 갖가지에 대하여 마음이 달라지는 일이 없으심이, 

 

譬如眞金 燒鍛打磨(비여진금 소단타마) 都無增損(도무증손)

마치 순금은 달구고 연마하고 두드리며 갈고 다듬어도 전혀 늘거나 주는 일이 없는 것과 같았으니,

 

以是故(이시고) 阿羅漢 雖斷結得道(아라한 수단결득도) 猶有殘氣(유유잔기)

不得稱婆伽婆(불득칭바가바)

이런 까닭에 아라한은 비록 번뇌를 끊고 도를 얻었더라도 여전히 습기가 남아 있으므로 바가바(bhagavat)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아라한이 비록 오개(五蓋)에 덮여 거친 마음에 묶인=結을 끊어내어 생사고해에서 벗어나는 참된 길(道)에 들어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였을지라도, 아직 무의식으로 갈무리된 불선업(不善業)의 버릇과 무의식이라는 응어리가 남아 있으므로 “바가바(bhagavat)”라 칭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問曰(문왈) 婆伽婆 正有此一名(바가바 정유차일명)? 更有餘名(갱유여명)?

묻나니, 바가바(bhagavat)는 단지 이 한 이름으로만 불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佛功德無量(불공덕무량) 名號亦無量(명호역무량)

此名取其大者(차명취기대자) 以人多識故(이인다식고)

답하나니, 부처님의 공덕이 한량이 없다면 명호 역시 한량이 없으니, 이 이름은 그 중에서 큰 것만을 취하였으니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復有異名 名多陁阿伽陁等(부유이명 명다타아가타등)

그 밖에 다른 이름이 있으니 다타아가타(Tathāgata)라고 불리는 이름 등이 있나니,  

 

◎陁阿伽陁(다타아가타, Tathāgata, 如來여래)

云何名多陁阿伽陁(운하명다타아가타)? 如法相解 如法相說(여법상해 여법상설)

어찌하여 다타아가타(Tathāgata)라 불리우는가?  한결같은 제법의 실상에 대해 설해 주시고,

 

타타가타(tathagata)=如來, 다아갈(多阿竭),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 多他阿伽度)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 다타아가태(多陀阿伽馱), 달살아갈(怛薩阿竭), 달타알다(怛他蘗多). 그 원어의 정확한 의미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불교 주석서에는 대략 8가지의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가장 널리 채택되는 해석은 'tathā= 如如, gata=去, 가다'라는 해석과 'tathā= 如如, āgata= 來, 오다'라는 해석이며, 양쪽 모두 역사상 석가모니가 과거 또는 미래에 깨달음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거'라는 번역어가 쓰이는 경우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후기 대승불교에서 여래는 모든 사람에게 내면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본질인 불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즉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진여와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모든 중생은 그러한 여래를 자신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여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참된 상태로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궁극적 실재를 지칭하기도 한다.

 

如諸佛安隱道來(여제불안은도래) 佛亦如是來(불역여시래) 更不去後有中(갱불거후유중)

是故名多陁阿伽陁(시고명다타아가타)

부처님들이 안은함에서 오신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도 역시 그렇게 오셔서, 다시는 後有=뒤의 몸을 받음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다타아가타라 하는 것이니라.

(한결같은 인연화합에 의한 현상과 작용에 어느 것 하나 치우침 없이 청정한 실상(法相)에 대해 말씀해주시며, 한결같이 모든 부처님께서는 시름걱정사라진 편안함 누리도록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참된 길(道)에 이를 수 있게 찾아오시는 것으로, 부처님께서도 이와 같이 이 세간에 찾아오시는 것이며, 다시 돌아가심이 아닌 이러한 까닭에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 Tathāgata)”라 부르는 것입니다.)

 

◎阿羅呵(아라가, Arhat, 아라하阿羅訶, 응공應供)

復名阿羅呵(부명아라가) 云何名阿羅呵(운하명아라가)?

또한 아라가(Arhat, 아라하, 阿羅訶)라고 부르나니, 어찌하여 아라가(Arhat, 아라하, 阿羅訶)라 부르는 것인가? 

 

아라가(阿羅呵, Arhat)= 아라한(阿羅漢)은 산스크리스트어 ‘아르하트(arhat)’와 팔리어 ‘아라한트(arahant)’의 음역으로 아로한(阿盧漢), 아라하(阿羅訶, 阿囉呵), 아려하(阿黎呵) 알라갈제(遏囉曷帝)로 음역하기도 한다. 한편 아라한은 그 의미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공양을 받을 만큼 존경스러운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응공(應供)’이라고 하며, 수행의 적인 모든 번뇌를 없앴다는 의미에서 ‘살적(殺賊)’진리에 상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응진(應眞)’모든 번뇌를 끊어 더이상 닦을 것이 없는 경지라는 점에서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그 외에 ‘불생(不生)’이나 ‘진인(眞人)’ 등으로 의역하는데, 보통은 나한(羅漢)이라고 칭한다.
원시불교시대에 『아함경(阿含經)』과 소승 율장에서는 아라한을 수행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자로 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 즉 성자(聖者)로 이해하였다. 여기서 성자란 모든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여 천안명(天眼明)·숙명명(宿命明)·누진명(漏盡明)의 삼명(三明)을 획득하고 수행의 목표인 아라한과를 증득한 사람을 지칭한다. 이후 상좌부 불교에서는 아라한 신앙이 쇠퇴하고 주로 중국이나 우리나라, 일본 등 대승불교 국가에서 나한 신앙의 형태로 존속하였다. 중국에서는 삼장법사 현장의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가 번역되어 이를 근거로 나한도가 널리 유통되며 나한 신앙이 확산되었다. 특히 당 말에는 나한을 공양하는 나한공(羅漢供)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나한 신앙이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 나한 신앙과 나반(那畔) 신앙 혹은 독성(獨聖) 신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나반 신앙은 한국불교의 고유한 신앙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阿羅”名“賊”('아라'명'적') “呵”名“殺”('가'명'살') 是名“殺賊”(시명'살적')

아라는 적(ari, 도적)이요, 가는 살(han, 죽이다)이니, 곧 살적=殺敵(도적을 죽이다)이라 이름 하느니라.

 

如偈說(여게설)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

佛以忍爲鎧(불이인위개) 精進爲剛甲(정진위강갑) 鎧 갑옷 개

부처님은 인욕(바라밀)의 갑옷을 입으시고, 정진(바라밀)이라는 투구을 입으시어,
持戒爲大馬(지계위대마) 禪定爲良弓(선정위양궁)
지계(바라밀)로써 큰 말을 삼고, 선정(바라밀)으로 좋은 활을 삼아,

 

智慧爲好箭(지혜위호전) 外破魔王軍(외파마왕군)

지혜(바라밀)이라는 훌륭한 화살을 활시위에 얹고서, 밖으로는 마왕의 군대를 무찌르고
內滅煩惱賊(내멸전뇌적) 是名阿羅呵(시명아라가)
안으로는 번뇌와 무명의 도적을 멸하시니, 이를 아라가(arhat)라 한다네.


復次 “阿”名“不”(부차 '아'명'부') “羅呵”名“生”('라가'명'생') 是名“不生”(시명'불생)

또한 '아(阿 a)'는 '불'이요, '라가(rhhat)'는 '생'이니, 불생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阿”名“不”(부차 '아'명'부') “羅呵”名“生”('라가'명'생')= arhat를 부정접두어 a-와 rahat의 합성어로 보는 경우이다.

 

佛心種子(불심종자) 後世田中不生(후세전중불생) 無明糠脫故(무명강탈고)

糠 겨 강,  매우 작은 것의 비유

부처님의 마음 종자가 뒷 세상의 밭에서 생겨나지 않아 어떠한 무명의 쭉정이도 벗겨지게 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마음에 반야바라밀로 된 혜명(慧命)이라는 씨앗을 심게 되면 후세에 복전(福田)에 무명(無明)이 생겨나지 않게 되어 불선업(不善業)이란 껍질 벗겨지게 되어 해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復次 “阿羅呵”名“應受供養”(부차'아라가' 명 '응수공양')

또한 아라가는 應受供養=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라 이름하나니, 

 

佛諸結使除盡(불제결사제진) 得一切智慧故(득일체지혜고)

부처님은 結使=번뇌와 집착의 습(버릇)이 모두 다하여, 온갖 지혜를 얻으신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오개(五蓋)에 덮힌 거친 마음에 묶이게 되어(結) 기꺼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에 부림을 당하는 버릇(使) 없애어 몸의 아픔과 마음의 고통 다하게 되어 일체지(一切智)를 터득하신 까닭에)

 

應受一切天地衆生供養(응수일체천지중생공양) 以是故 佛名阿羅呵(이시고 불명아라가)

일체 천지 중생들의 공양을 다 받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은 아라가라 부르는 것이니라.

 

◎三藐三佛陁(삼막삼불타, Samyaksaṁbuddha, 정등각正等覺, 정변지正遍知) 
復名三藐三佛陁(부명삼막삼불타)
云何名三藐三佛陁(운하명삼막삼불타)?

또한 삼먁삼불타(Samyaksaṁbuddha)라고 부르나니, 어찌하여 삼먁삼불타라 하는가? 

 

“三藐”名“正”('삼막'명'정') “三”名“遍”('삼'명'변') “佛”名“知”('불'명'지')

是名正遍知 一切法(시명정변지 일체법)
'삼먁(samyak)은 正=바름'이요, '삼(sam)은 遍=두루'이요, '불(buddha)은 知=아시는 분'이니, ‘일체법을 바르게 두루 아시는 분’이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問曰(문왈) 云何正遍知(운하정변지)
묻나니, 어떻게 바르게 두루 아시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일체법을 바르게 두루 아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知苦如苦相(지고여고상)
답하나니, 괴로움을 괴로움의 모습같이 아시고

(고(苦)와 한결같은 고(苦)의 실상(實相)을 아시고)

 

知集如集相(집지여집상) 쌓임을 쌓임의 모습같이 아시며,
(집(集)과 한결같은 집(集)의 실상(實相)을 아시며)

 

집(集)= 오온(五蘊)과 고(苦)가 어우러짐을 말함.


知滅如滅相(지멸여멸상)
사라짐을 사라짐의 모습같이 아시며,
(멸(滅)과 한결같은 멸(滅)의 실상(實相)을 아시고)


知道如道相(지도여도상) 도를 도와 같이 아시는 것이니라.

(도(道)와 한결같은 도(道)의 실상(實相)을 아십니다.)

 

是名三藐三佛陁(시명삼막삼불타) 이러한 것을 삼먁삼불타(samyaksambuddha)라 이름하느니라.

 

復次 知一切諸法 實不壞相(부차 지일체제법 실불괴상) 不增不減(부증불감)

또한 일체제법이 진실로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어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을 아시는 것이니, 

(또한,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실상(實相)이 무너지지 않고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것임을 아시는 것입니다.)

 

云何名不壞相(운하명불괴상)?

그렇다면 무엇을 不壞相=무너지지 않는 모습이라 하는가? 

(어찌하여 “실상(實相)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心行處滅 言語道斷(심행처멸 언어도단) 過諸法 如涅槃相不動(과제법 여열반상부동)

以是故 名三藐三佛陁(이시고 명삼막삼불타)

마음으로 행할 곳이 사라지고 언어의 길이 끊어져, 모든 법을 초월해 마치 열반의 모습 그대로 요동치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먁삼불타라 하느니라.

(마음에 대해 자세히 살펴서 마음과 함께하는 모든 곳에서 번뇌의 불길 꺼지게 되면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道)에 대한 온갖 논의(論議) 끊어내고 뛰어넘어,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라는 한결같음(如)인 열반에 이르게 되면 오욕(五慾)에 물든 산란한 마음을 끌어들이게 되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는 청정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不動)입니다.)

 

부동(不動)이란 말은 “오욕(五慾)에 물들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산란한 마음을 감싸고 끌어들이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는 청정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復次 一切十方 諸世界名號(부차 일체시방 제세계명호)

六道所攝 衆生名號(육도소섭 중생명호)

또한 온갖 시방세계의 명호이며, 6도에 중생을 소섭하는 명호이며,

(또한, 시방의 모든 세계에서 일체중생이 똑같이 부르는 명호(名號)이고, 육도(六道)의 중생을 감싸 들이는 명호(名號)이며) 

6도(六道)=천상도(天上道), 인간도(人間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 

 

衆生先世因緣 未來世生處(중생선세인연 미래세생처)

중생이 선세의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곳과  

 

一切十方衆生 心相 諸結使(일체시방중생 심상 제결사) 諸善根 諸出要(제선근 제출요)

시방의 온갖 중생들의 갖가지 심상과 모든 번뇌와 모든 선근과 모든 벗어나는 길 등 

 

如是等 一切諸法悉知(여시등 일체제법실지) 是名三藐三佛陁(시명삼막삼불타)

이러한 온갖 법을 다 아시나니, 이를 삼먁삼불타라 하느니라.

(시방세계에 있는 일체중생의 마음의 모습과 온갖 오개(五蓋)에 덮힌 거친 마음에 묶인=結과 기꺼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에 부림을 당하는 버릇(使)과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음을 명백하게 이해는(善根) 것과 온갖 일체세간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요긴한 것에 대해 이와 같이 일체제법(一切諸法)을 통해 모두 다 아시는 이러함으로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 samyaksambuddha)”라 부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