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2권 10
是時(시시) 長老阿難 一心合手(장로아난 일심합수) 向佛涅槃(향불열반)
方如是說言(방여시설언)
이때 장로 아난은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쪽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佛初說法時(불초설법시) 爾時我不見(이시아불견)
부처님께서 최초에 설법하실 때에, 그 때를 나는 보지 못하였거니와
如是展轉聞(여시전전문) 佛在波羅柰(불재바라나)
다음과 같이 전해들은 바로는, 부처님께서 바라내(바라나시)에 계시면서
佛爲五比丘(불위오비구) 初開甘露門(초개감로문)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최초로 감로의 문을 여시어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처음으로 불도(佛道)를 여시어 선정(禪定)이라는 감로로 열반문에 이르게 하셨나니)
說四眞諦法(설사진제법) 苦集滅道諦(고집멸도제)
4제(사성제)의 법을 연설하셨으니, 고ㆍ집ㆍ멸ㆍ도의 진리입니다.
사성제(四聖諦)=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 진리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의 성도(成道) 후 자기 자신의 자내증(自內證)을 고찰하여 설한 것이 십이인연(十二因緣)이라면, 사제설은 이 인연설을 알기 쉽게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체계를 세운 법문이다. 십이연기설이 이론적인 것임에 대해 사제설은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것이며, 오히려 실천을 주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성도 후 좌선사유(坐禪思惟)에 의해 스스로의 깨침을 즐겼으나, 인연의 이치가 매우 어려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설법 방법을 연구하여 사제설을 고안하였으며,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比丘)를 상대로 처음 설법한 것이 사제의 가르침이다.
첫째의 고제(苦諦)는 불완전하고 더러움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이다. 이 고(苦)는 구체적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4고(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애별리고(愛別離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온성고(五蘊盛苦)의 네 가지를 합한 8고로 하고 있다.
특히 자기 중심적인 애증(愛憎)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뇌는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구부득고는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앞의 것과 같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에 생기는 고통들이다. 오온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를 개괄한 것으로, 오온(五蘊 : 一切法)에 대한 자기 중심적인 집착을 가진다면 모든 것이 고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둘째의 집제(集諦)란 집기(集起), 즉 사물이 모여 일어나기 위한 원인이므로 고의 원인이나 이유라는 뜻이 된다. 고의 원인으로서 ‘도처에서 열락(悅樂)을 추구하여 그치지 않는 갈애(渴愛)’를 뜻하는데, 십이연기설에서는 무명(無明)과 갈애를 고뇌의 원인으로 함께 보고 있다.
그러나 갈애는 무명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므로 그 속에 무명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갈애는 모든 번뇌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갈애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의 삼애(三愛)가 있다. 욕애는 감각적 욕구인 오욕(五欲)에 대한 갈애로서, 현실에 있어서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애욕을 말한다. 유애는 존재를 뜻하는 유(有)에 대한 갈애로서, 사후에 천국 등의 훌륭한 곳에 태어나고 싶다는 욕구이며, 이도 자기 중심적인 욕구이며, 천국 등도 윤회계(輪廻界)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무유애의 무유는 비존재, 즉 허무를 말한다. 어떠한 존재도 절대 확실한 안온세계(安穩世界)가 아니기 때문에 꿈과 같이 아무것도 없는 허무계(虛無界)를 안주(安住)의 땅으로 삼는 것을 무유애라 하는데, 무유애 또한 자기 중심적인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는 것을 금하고 있다.
무아(無我)나 현세적 입장에서 볼 때 이 갈애는 번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고통의 원인을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으로 풀이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에게 맞으므로 탐욕을 일으키고, 맞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며, 그것이 다시 갖가지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셋째의 멸제(滅諦)는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향인 열반(涅槃)의 세계를 가리킨다. 즉 모든 번뇌를 대표하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함으로써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해탈을 얻음을 말한다.
넷째 도제(道諦), 도는 이상향인 열반에 도달하는 원인으로서의 수행방법이며, 구체적으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가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팔정도는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의 수행법이다.
이는 또 유(有)나 무(無)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中道)의 수행법으로서 원시불교의 근본교의를 이루고 있다.
사제 중의 고는 생사과(生死果)이고, 집은 생사인(生死因)이며, 멸은 열반과(涅槃果)이다. 이는 다시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열기(還滅緣起)의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두 가지는 생사유전의 고통과 그 원인을 말하고 멸과 도의 두 가지는 유전을 벗어나 무고안온(無故安穩)의 열반과에 도달할 수 있는 환멸의 수행법을 말한다.
그러나 후기의 학자들은 성문(聲聞)이 고집하는 사제의 견해를 파(破)하기 위하여 일체의 제법(諸法)이 공적(空寂)하다는 입장에서 볼 때는 고·집·멸·도가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집착을 깨뜨려서 사제의 진의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또한 선가(禪家)에서는 사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고제는 한 생각 물든 마음이 생기는 것을 뜻하고, 집제는 그 생각이 거듭 이어지는 것을 뜻하며,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멸제라 하고, 멸이 멸하지 않음을 철저히 아는 것을 도제라고 하였다. 즉 사제를 모두 한 생각에 둔 것이다.-다움백과
阿若憍陳如(아약교진여) 最初得見道(최초득견도)
아야교진여(Ājñata-Kauṇḍinya)가 최초로 견도를 얻었고
八萬諸天衆(팔만제천중) 皆亦入道迹(개역입도적)
8만의 하늘 무리들까지도 모두가 도적(paṭipadā)에 들어갔다네.
*道迹(도적)=일체의 성인들께서 가시어 머무시는 곳인 까닭에 “적(跡)”이라 합니다.
*3도(三道, triṣu mārgeṣu, mārga-traya, three holy paths, three paths)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수행(修行)의 3단계인 견도(見道) · 수도(修道) · 무학도(無學道)를 말한다. 즉, 3도는 성문과 보살 모두에게 해당하는 수행의 3단계이다. 성문은 부파불교의 수행자를 뜻하고 보살은 대승불교의 수행자를 뜻한다.
불교의 수행계위는 모두 윤회의 원인인 3계의 번뇌를 극복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3도(三道) 또한 마찬가지이며, 모든 번뇌를 견소단(見所斷) · 수소단(修所斷) 즉 견혹(見惑) · 수혹(修惑)으로 나누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견도(見道, darśana-mārga)는 수행자가 모든 견혹(見惑)에서 벗어나는 지위이다. '진리[諦]를 보는 단계[道]'라는 뜻에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하고, '진리를 봄'이라는 뜻에서 견제(見諦)라고도 하며 또한 '견도의 지위'라는 뜻에서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모든 견혹은 무루지(無漏智) 즉 무루의 지혜가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에 마치 해머로 바위를 산산이 깨뜨리듯이 한꺼번에 끊어진다. 불교에서는 견도를 성취한 유정을 성인 또는 성자라 부른다.
수도(修道, bhāvanā-mārga)는 수행자가 수혹(修惑)을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기간 또는 지위이다.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한다. 수도(修道)는 성인이 깨달음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길 또는 과정이므로, 진정 '성인의 길' 또는 '성스러운 길' 또는 '무루성혜(無漏聖慧)의 길'이라는 뜻의 성도(聖道, ārya-mārga, holy path, sacred path)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성도(聖道)는 불교 혹은 8정도를 뜻하기도 한다. 수도(修道) 또는 성도(聖道)는 "간략히 말해" 부파불교의 4향4과(四向四果)와 대승불교의 보살10지(菩薩十地)를 말한다.
무학도(無學道, aśaiksa-mārga)는 수행자의 수행이 완료되어 무학(無學) 즉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지위이다. 무학위(無學位)라고도 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로 '여래10호 가운데 하나로서의 아라한' 즉 부처의 지위, 즉 불지(佛地) 또는 여래지(如來地)이다.
是千阿羅漢(시천아라한) 聞是語已(문시어이) 上昇虛空(상승허공) 高七多羅樹(고칠다라수)
이때 모였던 천 명의 아라한들은 이 말을 듣자 허공으로 날아 일곱 개 다라수(Tāla)의 높이까지 올라가서
다라수(Tāla, 多羅樹)=인도의 해안 주변에서 자라는 종려과의 교목으로, 높이 약 20m에 이르며, 수액(樹液)은 사탕의 원료로 쓰이고 열매는 식용함.
길고 넓은 잎으로 부채·모자·우산 등을 만들고, 특히 고대 인도인들은 이 잎에 경문(經文)을 침으로 새기거나 대나무로 만든 붓으로 썼으며, 이 나무의 높이= 78척을 길이의 단위로 쓰기도 함.
皆言(개언) 咄(돌) 無常力大(무상력대) 如我等 眼見佛說法(여아등 안견불설법)
今乃言我聞(금내언아문)
입을 모아 말하였으니, 애달프다. 무상의 힘은 참으로 커서 우리들은 부처님과 함께하여 설법을 보고 듣고 하였으나 이제는 ‘내가 들었다.’라고 말하여야 하는구나.
便說偈言(편설게언)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我見佛身相(아견불신상) 猶如紫金山(유여자금산)
내가 부처님의 몸=佛身을 뵈오니, 마치 자마금 빛의 금산과 다름없어,
妙相衆德滅(묘상중덕멸) 唯有名獨存(유유명독재)
묘한 상호와 뭇 공덕이 사라지시고, 오직 이름만이 오롯이 남아 계시도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그 모습, 오온에 의한 번뇌의 불길 끈 공덕으로 이 세상에 오직 한 분 그렇게 불릴 수 있다네.)
금산(金山)= 수미산(須彌山)을 둘러싼 첫 번째 금위산(金圍山).
是故當方便(시고당방편) 求出於三界(구출어삼계)
그러므로 방편을 써서,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를 벗어나기 소원하여,
勤集諸善根(근집제선근) 涅槃最爲樂(열반최위락)
모든 선근 부지런히 모아야 하나니, 열반은 가장 즐거운 일이라네.
(이러한 까닭에 방편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삼계에서 벗어나서 무상정등정각 구하게 하는 것으로, 부지런히 훌륭하기 그지없는 참된 가르침(善法)을 모아,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 걸림 없고 막힘없음을 명백하게 이해하여야(善根) 열반이라는 으뜸가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리라.)
삼계(三界)=욕계는 욕계삼욕으로 불리는 식욕·성욕·수면욕 등의 욕망을 가진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색계는 욕계의 위에 있는 세계로서 천인이 거주하는 곳을 말한다. 이 세계는 선정의 깊이에 따라 4가지로 나뉘는데, 사선천 또는 사정려처라 불린다. 무색계는 물질을 싫어하며 벗어나고자 사무색정을 닦은 사람이 죽은 뒤에 태어나는 천계를 말한다. 이 세계는 4가지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비상비비상처는 삼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이기 때문에 유정천이라고도 한다. 삼계는 이처럼 여러 세계로 분류되고 각각의 세계에 따라 수명이나 고통의 정도가 다르지만 모두 윤회의 과정에 있는 고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는 것은 윤회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삼계를 모두 초월하여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爾時 長老阿泥盧豆 說偈言(시시 장로 아나로두 설게언)
그때 아니로두(아나율) 장로가 게송으로 말씀하여,
咄世閒無常(돌세간무상) 如水月芭蕉(여수월파초)
애달프다, 세간은 무상하여서, 물속의 달과 같고 파초와 같도다.
功德滿三界(공덕만삼계) 無常風所壞(무상풍소괴)
공덕이 삼계에 가득하시더니, 무상의 바람결에 파괴되었네.
爾時 大迦葉 復說此偈(이시 대가섭 부설차게)
그때 대가섭 존자도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無常力甚大(무상력심대) 愚智貧富貴(우지빈부귀)
무상의 힘은 참으로 커서, 어리석건 지혜롭건 가난하건 부귀하건
得道及未得(득도급미득) 一切無能免(일체무능면)
도를 얻었건 아직 얻지 못하였건, 어느 누구도 면할 길이 없구나.
非巧言妙寶(비교언묘언) 非欺誑力諍(비사광력쟁)
교묘한 말재주가 묘한 보배는 아니며, 속임수나 힘으로 겨룰 수 있는 바도 아니니,
如火燒萬物(여화소만물) 無常相法爾(무상상법이)
마치 불이 만물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무상의 모습은 언제나 그러하다네.
(무상(無常)이라는 일체법의 실상(實相)이 그러한 것이니.)
大迦葉語阿難(대가섭어아난)
대가섭 존자가 아난 존자에게 말하였으니,
從'轉法輪經'至'大般涅槃'(종'전법륜경' 지 '대열반경') 集作四阿含(집작사아함)
전법륜경(Dharmacakrapravartanasūtra)에서 대반열반경(Mahāparinirvāṇasūtra)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아서 네 가지 아함을 결집하니,
'增一阿含(증일아함)' '中阿含(중아함)' '長阿含(장아함)' '相應阿含(상응아함)'
是名修妒路法藏(시명수투로법장)
증일아함(Ekottarāgama)ㆍ중아함(Madhyamāgama)ㆍ장아함(Dīghāgama)ㆍ상응아함(Saṃyukt- āgama)이니, 이러함을 수투로법장(sūtrapiṭaka, 경)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이러함을 ‘경(經)이라는 법장(法藏)’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