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권 25

Skunky 2023. 6. 25. 06:00

 

2. 초품(初品)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 풀이함-7 


問(문) 雖一數合故(수일수합고) 甁爲然一 不作甁(병위연일 불작병)

묻나니, 비록 하나라는 수효와 합하기 때문에 병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가 병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비록 하나라는 것이 셈법이고 인연화합에 의하여 펼쳐지는 사물의 어느 하나를 헤아릴 때 쓴다고 할지라도 하나가 있어야 ()”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하나가 없다면 ()”을 헤아릴 수도 없잖습니까?)


答曰(답왈) 諸數初一 一與甁異(제수초일 일여병이) 以是故甁不作一(이시고병불작일)

답하나니, 모든 수효의 첫머리가 하나이다. 하지만 하나는 병과 다르니, 그러므로 병을 하나라 하지 못하는 것이며, 

(모든 셈법의 제일 처음이 하나이고이 하나는 ()”이라는 사물을 헤아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어서이러한 까닭에 ()”을 하나라고 해서는 안되거니와이 하나속에 ()”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 또한 아무리 그 숫자가 많아질지라도 그 속에 하나로 담겨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一無故 多亦無(일무고 다역무) 何以故(하이고) 先一後多故(성일후다고)

하나가 없기 때문에 많음도 없게 되니, 왜냐하면 먼저가 하나이고 나중이 많음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첫 번째 것을 “하나”라고 부르고 이렇게 “하나하나”가 늘어나는 것을 “많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如是異中 一亦不可得(여시이중 일역불가득)

이와 같이 다름 가운데서는 하나라는 것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라는 셈법과 “병(甁)”이 다르거니와, “하나”의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으므로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以是故 二門中求一法 不可得(이시고 이문중구일법 불가득)

그러기에 二門=색법과 셈법의 두 문에서 한 법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으므로 

 

不可得故 云何陰持入攝(불가득고 운하음지입섭)?

어떻게 음ㆍ입의 경지에 속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색법과 셈법 가운데 “하나”를 구하려는 셈법의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으므로 얻지 못하거니와, 얻지 못하는 까닭에 오온(五蘊)을 비롯한 12입(入)과 18계(界)라는 제법(諸法)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까?)

 

但佛弟子 隨俗語言(단불제가 수속어언) 名爲一 心實不著(명위일 심실불착)

知數法名字有(지수법명자유)

다만 불제자들은 세속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고 하거니와 실제로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수효의 법이나 명자가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이니라. 

(오로지 부처님의 제자들이 세속의 법도를 따르는 것일 뿐이어서 하나라는 말을 빌려 쓰는 것이어서마음을 내어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고 붙들려서 아니 되나니알고 보면 단지 숫자를 헤아리고자 하는 맨 처음에 있는 셈법일 뿐입니다.)

 

以是故 佛法中言一人(이시고 불법중언일인) 一師 一時 不墮邪見咎(일사 일시 불타사견구)

그러므로 불법에서는 한 사람, 한 스승, 어느 한 때라 하여도 삿된 소견의 허물에 빠지지 않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에 한 사람, 한 스승, 한 때 등등의 말이 있는 것이나니삿된 견해에 떨어져 허물을 지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時”者의 해설

 

略說“一”竟(약설 '일'경) “時”者 今當說('시'자 긍당설)

간략하게 ‘하나’를 풀이해 마치고, 이제 ‘때=時’(samaye)에 관해서 설명하리라.


問曰(문왈) 天竺說“時”名有二種(천축설 '시' 명유이종)

一名迦羅 二名三摩耶(일명가라 이명삼마야)

묻나니, 천축에서 시간을 말할 때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가라(kāla)요, 또 하나는 삼마야(samaya)입니다. 

(천축(天竺)의 말에 ()”란 두 종류의 이름으로 불리니하나는 ()”라는 뜻의 가라(迦羅 kāla)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한 때를 나타내는 삼마야(三摩耶 samaya)거늘부처님께서는 어떤 연유로 가라(迦羅)라 하시지 않고 삼마야(三摩耶)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가라(迦羅, kāla)= 실시(實時).

삼마야(三摩耶, samaya.)= 가시(假時).

 

佛何以不言迦羅而言三摩耶(불하이불언 가라이언 삼마야)?

그런데 부처님은 어찌하여 가라로 말씀하시지 않고 삼마야로 말씀하셨습니까?


答曰(답왈) 若言迦羅 俱亦有疑(약언가라 구역유의)

답하나니, 가라로 말한다 하여도 역시 의문이 있게 되나니, 

(만약 가라(迦羅)라 말씀하시게 되면 모든 시간을 다 포함하는 것이 되므로 의문이 일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問曰(문왈) 輕易說故 應言迦羅(경이설고 응언가라)

묻나니, 가볍고 쉽게 말하기 위해서는 가라로 해야 되니, 

 

迦羅二字 三摩耶三字(가라이자 삼마야삼자) 重語難故(중어난고)

가라는 두 음절이요 삼마야는 세 음절이니 말이 겹치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볍고 쉽게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는 가라(迦羅)라고 말씀하셔도 될 터인즉, 가라(迦羅)는 두 음절이고 삼마야는 세 음절이며 말의 의미가 무겁고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答曰(답왈) 除邪見故(제사견고) 說三摩耶 不言迦羅(설삼마야 불언가라)

답하나니,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니라.

復次 有人言(부차 유인언) 一切天地好醜(일체천지호추) 皆以時爲因(개이시위인)

如'時經'中偈說(여'시경'중게설)
또한 어떤 사람은 '온갖 천지의 좋고 나쁜 것은 모두가 때=時로써 원인을 삼는다'고 말했으며, 시경(Kāla-sūtra)에서는 이렇게 게송으로 말하고 있다.
(어느 분께서는, “세상천지 모든 좋고 나쁜 일은 다 때가 되면 벌어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時來衆生熟(시래중생숙) 時至則催促(시지즉최촉)

때가 오면 중생이 익어지고, 때에 이르면 재촉을 하고
時能覺悟人(시능각오인) 是故時爲因(시고시위인)
때가 능히 사람을 깨우치니, 그러므로 때가 원인이 되느니라.
(때가 찾아오는 것은 중생의 업이 익었다는 것이요
때가 되었다는 것은 업을 지을 만큼 지었다는 것이니
때가 되면 스스로 잘잘못을 깨닫게 되는, 이러함이 때가 되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世界如車輪(세계여차륜) 時變如轉輪(시변여전륜)

세계는 수레바퀴 같아, 때가 변함은 바퀴가 굴러감과 같으니
人亦如車輪(인역여차륜) 或上而或下(혹상이혹하)

사람도 수레바퀴와 같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세계는 수레바퀴처럼 쉼 없이 구르고,

때가 변하는 것도 쉼 없이 구르는 수레바퀴와 다름이 없나니
사람도 수레바퀴처럼 쉼 없이 굴러, 누구는 하늘에 나고 누구는 지옥에 난다.)


更有人言(갱유인언) 雖天地好醜 一切物非時所作(수천지호추 일체불비시소작)

然時是不變因 是實有(연시시불변인 시실유)

묻나니, 어떤 사람은 “비록 천지의 좋고 나쁜 모든 물건을 때=時가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때=時는 변치 않으며, 因=원인은 실로 있는 것이라, 

(또 어느 분께서, “비록 천지간의 아름답고 추한 것과 모든 사물이 때와 장소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 아니지만때가 무르익어도 원인이 변하는 것 아니기에 이러한 일이 실로 있게 되는 것이며)

 

時法細故(시법세고) 不可見 不可知(불가견 불가지)

以華果等果故 可知有時(이화과등과고 가지유시)

때의 법칙=時法은 섬세하여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꽃이나 열매 따위의 결과에 의하여 때가 있음을 알게되나니, 

(때가 되면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시법(時法)은 분간하기 어려워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어서 꽃이 진 다음 열매 맺듯 분명히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어서 때가 반드시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往年今年 久近遲疾(왕년금년 구근지질) 見此相 雖不見時(견차상 수불견시)

可知有時(가지유시)

작년이나 금년의 오래고 가깝고 더디고 빠른 모습을 보면, 때=時를 보지 못하더라도 때가 있음을 알 수 있으니, 

 

何以故(하이고) 見果知有因故(견과지유인고)

왜냐하면 결과를 보면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의 법칙이 있나니, 

(해가 지났기에 올해가 있듯 오래되어서 가까운 줄도 알게 되고 더딘 것에 의해 빠른 것 알게 되는 것처럼 이러함을 살펴볼 수 있게 되나니, 비록 때를 보지는 못할지라도 때가 반드시 있음을 알 수 있다.)

 

以是故有時法 時法不壞故常(이시고유시법 시법불괴고상)

때=時의 법칙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결과를 보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 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때가 되면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시법(時法)이 분명히 있고 때가 되면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시법(時法)은 무너지지 아니하여 항상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答曰(답왈) 如泥丸是現在時(여니환시현재시) 土塵是過去時(토진시과거시)

甁是未來時(병시미래시)

답하나니, 진흙 덩어리는 현재의 때=時요, 흙이나 먼지는 과거의 때=時요, 병은 미래의 때=時이며, 

(마치 진흙덩어리를 지금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흙먼지는 과거의 시간이 될 것이요, “병(甁)”은 미래의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時相常故(시상상고) 過去時不作未來時(과거시불작미래시)

때=時의 모습이 항상한 까닭에 과거의 때=時는 미래의 때=時를 만들지 못하느니라.
(시간의 모습이 항상 한 까닭에 과거의 시간에 의해 미래의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汝經書法 時是一物(여경서법 시시일물) 以是故(이시고) 過去世不作(과거세불작)

未來世亦不作(미래세역불작) 現在世雜過故(현재세잡과고)

그대들의 경서=時經의 법에서 때=時는 한 물건이라 했기에 과거의 세상은 미래의 세상이 되지 못하고, 역시 현재의 세상도 되지 못하나니, 잡된 과거이기 때문이니라.
(그대가 “시경(時經)”의 법칙을 내세워서 시간을 하나의 과일 열매로 비유하였거니와, 이러한 까닭에 과거의 시간을 통해서 미래의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간도 과거의 시간과 뒤섞이지 않게 되는 까닭입니다.) 

 

過去世中 亦無未來世(과거세중 역무미래세) 以是故無未來世(이시고무미래세)

現在世亦如是(현제세역여시)

과거의 세상에는 역시 미래의 세상도 없으니, 그렇기에 미래의 세상이 없으며, 현재의 세상 역시 그러하니라.

(과거의 시간 속에 역시 미래의 시간을 담을 수 없는 이러한 까닭에 역시 미래의 시간 속에 현재의 시간 담을 수 없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問曰(문왈) 汝受過去土塵時(여수과거토진시) 若有過去時(약유과거시)

必應有未來時(필응유미래시) 以是故實有時法(이시고실유시법)

묻나니, 그대가 과거의 흙과 먼지의 때를 용인하는 경우, 만일 과거의 때가 있다면 반드시 미래의 때도 있어야 하며, 그러므로 때의 법칙은 실제로 있습니다.

(당신께서 과거라는 시간을 흙먼지라고 표현하여 받아들였듯이, 만약 과거의 시간이 있다면 반드시 미래의 시간도 있을 것이고, 이러한 까닭에 때가 되면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시법(時法)이 진실로 있는 것입니다.)

 

答曰(답왈) 汝不聞我先說(여불문아선설) 未來世甁(미래세병) 過去世土塵(과거세토진)

답하나니, 그대는 내가 이미 말한 것을 듣지 못했는가? 미래 세상은 병이요, 과거 세상은 흙과 먼지이니, 

(그대는 내가 앞에서 말한 것을 듣지 못했습니까?
미래의 시간을 “병(甁)”이라 하였고 과거의 시간을 흙먼지라 하였습니다.)

未來世不作過去世(미래세불작과거세) 墮未來世相中(타미래세상중)

是未來世相時(시미래세상시) 云何名過去時(운하명과거시)?

미래의 세상은 과거 세상을 만들지 못하니, 미래 세상의 모습에 떨어진다면 이는 미래 세상의 모습의 때=相時이거늘 어찌 과거의 때라 하겠는가. 

(미래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을 만들지 못하듯이, 미래 시간의 모습이 “병(甁)”이라면 미래 시간은 “병(甁)”이라는 모습을 시간으로 삼을 것인즉 과거의 시간은 흙먼지이거늘, 어찌하여 “과거 시간의 연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以是故 過去時亦無(이시고 과거시역무)

그러므로 과거의 때=時 또한 없는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과거라는 시간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