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1권 18
復次(부차) 餘經中 多以三種門說諸法(여경중 다이삼종문설제법)
또한 그 밖의 경에서 대부분 三種=세 가지 법으로써 모든 법문을 설하셨으니,
(또한, 그 밖의 경(經)에서는 대부분 3종(種)으로 열반문에 이를 수 있게 제법(諸法)에 대해 말씀하셨나니,)
所謂善門 不善門 無記門(소위선문 불선문 무기문)
이른바 선문과 불선문, 그리고 무기문이니라.
무기문(無記門, avyākṛta.)= 아직 선(善)이나 악(惡)이 발현하지 않은 상태
今欲說非善門(금욕설 비선문) 非不善門(비불선문) 非無記門 諸法相故(비무기분제법상고)
說摩訶般若波羅蜜經(설마하반야바라밀경)
지금 선문도 아니고 불선문도 아니며, 그리고 무기문도 아닌 제법의 실상에 대해 말씀하시기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설하시는 것이니,
學法 無學法(학법 무학법) 非學 非無學法(비학비무학법) 見諦斷法(견제단법) 思惟斷法(사유단법)
이 밖에 배울 것 있는 이의 법=有學法과 배울 것 없는 이의 법=無學法, 그리고배울 것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 이의 법=非學非無學法과 진리를 보아 끊는 법=見諦斷法과 사유로써 끊는 법=思惟斷法,
(참된 가르침(法)을 통해 제법(諸法)이 ‘공(空)’하여서 삼세에 걸쳐 어느 것 하나 치우치지 않는 것임을 배워야 하는 사람=有學과
배움을 통해 일체법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는 것임을 터득한 사람들=無學과,
참된 가르침(法)에 대해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인 사람들,
見諦斷法=견제도(見諦道)라는 사지(四地)에서 참된 가르침(法)을 통해 무의식에 갈무리된 불선업(不善業)의 버릇과
思惟斷法=무의식이라는 응어리를 끊어내고 참된 가르침(法)을 통해 사유(思惟)하여 삿된 견해를 끊어내며)
見諦斷法(견제단법,darśanaheya-dharma.)= 4제(諦)를 관찰하여 번뇌를 끊는 단계
思惟斷法(사유단법, bhavanāheya-dharma)= 견제단의 관법수행을 마친 뒤 다시 수습을 더해 사유의 의혹을 끊는 단계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 갓 입문한 초학자로 성문의 사람은 홀로 열반만을 위하는 까닭에 부지런히 정진하여 계(戒)를 지니어 맑고 깨끗함을 지키고 가꾸어 나아가며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道)의 끝자락에 이르고자 삶의 온갖 아픔과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거니와, 간혹 관불삼매(觀佛三昧)를 배우거나 부정관(不淨觀)을 배우거나 혹은 일체중생을 한없이 사랑하여 항상 걱정근심 벗어난 편안함으로 즐거운 일을 구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보탬이 되도록 생각하고(大慈) 중생이 오도(五道)를 오가며 여러 가지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한없이 가엾고 안쓰럽게 생각하는(大悲) 마음에 대해 자세히 살피거나 무상(無常)을 비롯한 “고(苦) 공(空) 무아(無我)”를 살펴보며 온갖 훌륭하기 그지없는 참된 가르침(善法)을 통해 공덕을 모으고자 분별하고 오개(五蓋)라는 불선법(不善法)은 버려가며 비록 나름의 지혜를 지녔을지라도 선정(禪定)이라는 감로수(甘露水)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즉 결코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道)의 끝자락에 이르러 무상도(無上道)를 결코 얻지 못하는 까닭에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이라 하는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
無斷法 可見有對(무단법 가견유대) 不可見有對(불가견유대) 不可見無對(불가견무대)
끊어지지 않는 법=無斷法과 볼 수 있고 대함이 있는 것=可見有對와 볼 수 없으나 대함이 있는 것=不可見有對와 볼 수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不可見無對와
(無斷法 (무단법)=참된 가르침(法)을 통해 오개(五蓋)에 덮힌 거친 마음에 묶이게 된 것(結) 끊어내어 일체법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도 없게 되는 것과,
可見有對=마주하게 되는 것의 그 어딘가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것과
不可見有對= 마주하지 않는 것의 그 어딘가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도 지니지 않는 것,)
上中下法 小大無量法(상중하법 소대무량법) 如是等三法門亦如是(여시등 삼법문역여시)
위ㆍ중간ㆍ아래의 법 등 크고 작은 무수한 법이 있으니, 이렇듯 세 등급의 법문도 이와 같다.
(상중하로 된 가르침(法)과 크고 작은무량(無量)한 가르침(法) 등이 이와 같거니와 3종(種)으로 열반문에 이르게 하는 참된 가르침(法)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법(法, dharma)= 어근 √dhṛ(떠받치다)에서 보듯이 dharma는 어떤 현상을 근본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경전 속에서 법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데, 대략 ‘가르침,’ ‘속성,’ ‘덕성,’ ‘특성,’ ‘사물,’ ‘의식의 대상’ 등을 의미.
復次(부차) 餘經中說 四念處(여경중설사념처) 隨聲聞法門(수성문법문)
또한 그 밖의 경에서 4념처를 설하시어, 성문의 법문에 따르게 하였는데,
4념처(4念處,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에 염을 집중하는 관법이며 4념주(念住)라고도 한다.
잡아함경에서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을 떠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는 일승(一乘)의 법이 있나니, 이른바 4념처(念處)이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몸[身]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와 느낌[受]·마음[心]도 마찬가지이며, 법(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이다. 만일 4념처(念處)를 멀리 여읜다면 성현의 법을 멀리 여의게 되고, 성현의 법을 멀리 여의게 되면 거룩한 도를 멀리 여의게 되며, 거룩한 도를 멀리 여의게 되면 감로의 법을 멀리 여의게 되고, 감로의 법을 멀리 여의게 되면 태어남[生]·늙음[老]·병듦[病]·죽음[死]·근심·슬픔·번민·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만일 4념처를 믿고 즐거워한다면 성현의 법을 믿고 즐거워하게 되고, 성현의 법을 믿고 즐거워하면 거룩한 도를 믿고 즐거워하게 되며, 거룩한 도를 믿고 즐거워하면 감로의 법을 믿고 즐거워하게 되며, 감로의 법을 믿고 즐거워하면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략
於是比丘 觀內身三十六物(어시비구 관내신삼십육물) 除欲貪病(제욕탐병)
如是觀外身(여시관외신) 觀內外身(관내외신)
여기에서 비구는 內身=사람의 몸안에 있는 서른여섯 가지 부정물=三十六物을 관찰하여 탐욕의 병을 제거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밖의 몸과 안팎의 몸을 관찰하며,
(이렇게 비구들이 몸 안의 서른여섯 가지 더러운 여러 기관=三十六物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여 탐욕의 병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하고, 이와 같이 몸 밖의 육경(六境)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며 몸의 안팎인 12입(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今於四念處(금어사념처) 欲以異門 說般若波羅蜜(욕이이문 설반야바라밀)
이제는 4념처에서 다른 법문=가르침으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려 하시니,
如所說(여소설) 菩薩觀內身(보살관내신) 於身不生覺觀(어신불생각관)
不得身 以無所得故(불득신 이무소득고)
이른바 보살이 몸안=6입을 관찰하되 몸에 대해서 각관을 일으키지 않고 몸을 얻지 않으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보살이 몸의 6입(入)에 대해 살펴보고=觀內身 몸의 생겨남이 인연의 화합에 의한 것이어서 몸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 지니지 않게 되면 오개(五蓋)에 덮힌 거친 마음(覺)과 오욕(五慾)으로 인하여 생각에서 생각으로 이어지는 산란한 마음(觀)이 생겨나지 않게 되어, 몸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 여겨 얻으려 하지 않게 되나니=不得身 , 몸의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以無所得故.”고 말씀하셨습니다.)
각관(覺觀, 각각 Vitarka Vicāra)= 각과 관은 선정 중에 나타나는 일종의 사유작용으로 선정이 깊어감과 더불어 소멸된다. 대표적인 선정 수습법인 4선(禪) 가운데 초선과 제2선은 각관이 소멸해 가는 순서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각은 어떤 대상이 문득 떠오르고 다시 이를 분별하는 사유작용으로 일종의 ‘거친 사유’이다. 한편 관은 이렇게 떠오른 사유작용이 점점 미세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곧 정신집중이 깊어지고 안정됨에 따라 생각이 사라져 가는 와중에 해당된다. 이 두 사유작용이 완전히 그친 경지가 다름 아닌 제4선의 사념청정(捨念淸淨:대상에 무관심해진 채 다만 의식만이 맑게 존재하는 상태)이라 하는 것이다.
如是觀外身(여시관외신) 觀內外身(관내외신) 於身不生覺觀(어신불생각관)
不得身 以無所得故(불득신 이무소득고)
마찬가지로 몸 밖의 6경을 관찰하고, 몸 안팎의 12입을 관찰함에도 몸에 대하여 각관을 내지 않고, 몸을 얻으려 하지 않으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몸 밖의 6경을 살펴보고 몸 안팎의 12입(入)을 살펴보아 몸의 생겨남이 인연의 화합에 의한 것이어서 몸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도 지니지 않게 되면, 제멋대로의 거친 마음=覺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으로 이어지는 산란한 마음=觀이 생겨나지 않게 되어 몸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가히 얻으려 하지 않나니, 몸의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기 때문입니다.)
於身念處中觀身(어신념처중관신) 而不生身覺觀(이불생신각관) 是事甚難(시사심난)
신념처를 통하여 몸을 관찰하되 몸의 각관=身覺觀을 내지 않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신념처(身念處)를 통해서 몸을 살펴보되, 몸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를 지니지 않게 되면 오개(五蓋)의 거친 마음=覺과 오욕(五慾)에 물들어 생각에서 생각으로 이어지는 산란한 마음=觀이 생겨나지 않게 되는 것이야 말로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 이 각관(覺觀)을 감싸고 끌어들여 청정(淸淨)한 마음만 남게 되는 것을 삼매(三昧)요 선정(禪定)이며 해탈(解脫)이라 합니다.)
三念處亦如是(삼념처역여시) 四正勤 四如意足 四禪 四諦等(사정근 사여의족 사선 사제등)
種種四法門亦如是(종종사법문역여시)
나머지 세 가지 염처 또한 역시 그러하며, 4정근, 4여의족, 4선, 4제 등의 갖가지 네 종류의 법문=四法門도 그러하니라.
4제(諦, cataḥ satya)= 깨닫지 못한 생존은 고(苦)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리=苦諦와 고의 원인을 밝히는 진리=集諦와 고가 멸한 경지에 관한 진리=滅諦 그리고 고의 소멸로 이르는 길에 관한 진리=道諦를 말한다.)
復次(부차) 餘經中 佛說五衆(여경중 불설오중) 無常 苦 空 無我相(무상 고 공 무아상)
또한 그 외의 경에서 부처님은 5중=오온의 무상, 고, 공, 무아의 상을 설하셨나니,
(또한, 그 밖의 경(經)에서 부처님께서는 오온(五蘊)과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가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라고 말씀하셨거니와)
今於是五衆 欲說異法門故(금어시오중 욕설이법문고) 說般若波羅蜜經(설반야바라밀경)
지금 여기에서는 5중=오온을 다른 법문으로 설하시기 위하여 '반아바라밀경'을 설하셨느니라.
(지금 다른 가르침(法)을 통해 열반문에 이르게 하고자 오온(五蘊)을 말씀하시고자 반야바라밀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如佛告須菩提(여불고수보리)
마치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菩薩若觀色是常行(보살약관색시상행) 不行般若波羅蜜(불행반야바라밀)
보살이 만일 색은 항상하다고 관찰하여 행한다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니,
(보살이 색온(色蘊)이 항상 함에 대해 자세히 살펴서,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를 지니지 않는 것이 반야바라밀에 대해 자세히 살피는 것이며)
색(色, rūpa)= 물질, 일반 혹은 유정의 몸을 말한다. 어근√rūp(모양을 취하다)에서 만들어진 말로 ‘형태나 색깔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 한편 √rū(무너지다)에서 파생되었다고 보아 ‘무너지는 존재,’ ‘변화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受想行識是常行(수상행식시상행) 不行般若波羅蜜(불행반야바라밀)
수ㆍ상ㆍ행ㆍ식이 항상하다고 관찰하여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니라.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의 실상(實相)의 항상 함에 대해 자세히 살펴서,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를 지니지 않는 것이 반야바라밀에 대해 자세히 살피는 것이며)
수(受, vedanā)는 외부로부터 인상(印象)을 받아들이는 감수작용,
상(想, saṃjñā)은 마음으로 생각을 일으키는 표상작용,
행(行, saṃskāra)은 의지 혹은 잠재적 형성력,
식(識, vijñāna)은 인식 혹은 식별작용.
色無常行(색무상행) 不行般若波羅蜜(불행반야바라밀)
색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이는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색온(色蘊)의 무상(無常)함을 관찰하여,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를 갖지 않는 것이 반야바라밀에 대해 자세히 살피는 것이며)
受想行識無常行(수상행식무상행) 不行般若波羅蜜(불행반야바라밀)
수ㆍ상ㆍ행ㆍ식은 무상하다고 관찰하여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의 무상(無常)함에 대해 자세히 살펴서,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도 갖지 않는 것이 반야바라밀에 대해 자세히 살피는 것이니라.)
五受衆五道如是等(오수중 오도여시등) 種種五法門亦如是(종종오법문역여시)
이밖에 5수중과 5도 등 갖가지 다섯 종의 법문들도 모두 이와 같으며,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라는 오수중(五受眾)과 오도(五道) 등 이와 같이 5종(種)으로 열반문에 이르게 하는 참된 가르침(法)도 이와 같으니라.)
오수중(五受衆)=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
고수(苦受), 수는 감각이라는 뜻으로 고수는 3수(受)의 하나이다. 육체적 고통의 감각으로 낙수(樂受)의 반대.
낙수(樂受), 삼수(三受:감수(感受)의 3종)의 하나이며, 쾌적한 대상을 감수(感受)하고, 심신을 기분 좋게 하는 감각.
희수(喜受), 마음으로 기쁘게 느끼는 것. 마음 가운데 기쁨을 받고 아직 몸의 즐거움에 미치지 않은 상태
우수(憂受), 근심=憂의 감수작용이며 우수(憂受)는 욕계(欲界)에만 있고 색계와 무색계에는 없다.
사수(捨受),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감각.
5도(道)= 6도(道)를 약하여 5도(道)로 할 때는 천(天)·인·아귀·축생·지옥.
餘六 七 八等(여육 칠 팔 등) 乃至無量法門亦如是(내지무량법분역여시)
그 밖의 6ㆍ7ㆍ8에서 무량한 법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으니라.
如摩訶般若波羅蜜無量無邊(여마하반야바라밀무량무변) 說般若波羅蜜(설반야바라밀)
因緣亦無量無邊(인연역무량무변)
마하반야바라밀이 한량없고 무량하듯이 반야바라밀의 인연을 설하심 역시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느리라.
是事廣故(시사광고) 今略說 摩訶般若波羅蜜 因緣起法竟(금약설 마하반야바라밀 인연기법경)
이러한 일은 광대하기에 이제 간략히 마하반야바라밀다의 인연법에 관하여 설명하기를 마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