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제1권 5
是故自現最妙功德(시고자현최묘공덕) 出大神力(출대신력)
그러므로 스스로 가장 묘한 공덕을 나타내시고 큰 신통력=神力을 나타내 보이시나니,
如般若波羅蜜(여반야바라밀) 初品中說(초품중설)
이는 마치 '반야바라밀경'의 초품에 설하신 바와 같이,
佛入三昧王三昧(불입삼매왕삼매) 從三昧起(종삼매기)
'부처님께서 삼매왕삼매에 드셔서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져서 시방세계를 막힘없이 꿰뚫어보신 후) 삼매로부터 일어나셔서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 모든 삼매 가운데 가장 으뜸이고 自在하여서 능히 한량없는 법을 반연하는 모든 삼매 가운데 최상의 삼매
以天眼觀十方世界(이천안관시방세계) 擧身毛孔皆笑(거신모공개소)
천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살펴보시며, 온몸의 모공이 모두 열리고 털이 정수리를 향하여 솟구쳐서 웃음꽃이 피게 하시고,
천안(天眼)= 여래의 오안(五眼)의 하나.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
①육안(肉眼) :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것.
②천안(天眼) :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보고 애틋한 마음(연민심)을 일으키는 것.
③혜안(慧眼) :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
④법안(法眼) :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 남을 위해 이타행(利他行)을 하는 보살의 눈
⑤불안(佛眼) : 미세한 번뇌까지 영원히 없어져 오롯하게 밝아 모든 것을 빠짐없이 두루 비추는 것. 불지견(佛知見)의 눈'
從其足下千輻輪相(종기족하천복(폭)륜상) 放六百千萬億種種色光明(방육백천만억종종색광명)
輻 바퀴살 복, 폭
그 발바닥의 일천개의 바퀴=千輻輪相으로부터 6백 천 만억의 갖가지 광명을 놓으시며,
*천폭륜상(千輻輪相) 32상의 하나. 부처님의 발바닥에 있는 천개의 수레바퀴와도 같은 무늬이며 이는 모든 법이 원만함을 나타내는 상이라 함.
從足指上至肉髻(종족지상지육계) 處處各放(처처각방)
六百千萬億種種色光明(육백천만억종종색광명)
발가락으로부터 위로는 정수리=肉髻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제각기 6천만억 가지의 광명을 발하시니,
普照十方無量無數(보조시방무량무수) 如恒沙等諸佛世界(여항사등제불세계)
皆令大明(개령대명)
시방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불세계(불국토)를 비추어 모두 환하게 밝히셨습니다.
*佛世界(불세계)= 불국토(佛國土) 또는 불찰(佛刹)
*皆令大明(개령대명)= 광명을 놓는 이유에 대해 『대지도론』(제25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어떤 이가 부처님께서 무량한 몸으로 대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면 마음에 믿음이 청정해지고 공경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로 인해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有人見佛無量身放大光明. 心信淸淨恭敬故. 知非常人).”
佛從三昧起(불종삼매기) 欲宣示一切諸法實相(욕선시일체제법실상)
곧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셔서, 온갖 일체 제법의 실상에 대하여 (중생들에게) 보여 주시어
斷一切衆生疑結故(단일체중생의결고) 說般若波羅蜜經(설반야바라밀경)
일체 중생의 의혹=疑結을 끊어 주시려는 까닭에 '반야바라밀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일체중생이 오개(五蓋)에 덮여 제멋대로 날뛰는 거친 마음에 묶이게 되어(結) 의심하는 버릇을 끊어내기 위한 까닭에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復次有惡邪人(부차유악사인) 懷嫉妒意誹謗言(회질투의비방언)
懷 품을 회, 嫉 미워할 질, 妒 강새암할 투, 妬와 同字, 誹 헐뜯을 비
또한 어떤 사악한 사람은 질투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비방하기를
佛智慧不出於人(불지혜불출어인) 但以幻術惑世(단이환술혹세)
'부처의 지혜를 인간의 몸으로는 드러낼 수 없거늘, 환술로써 세인을 현혹시킬 뿐이라고 하였으나,
斷彼貢高邪慢意故(단피공고사만의고) 現無量神力(현무량신력)
그들의 사악하고 교만한 마음을 꺾기 위하여 한량없는 (반야바라밀을 통해) 무한한 신통력과
無量智慧力(무량지혜력) 於般若波羅蜜中自說(어반야바라밀중자설)
무량한 지혜의 힘을 나타내어 '반야바라밀경'에서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我神德無量(아신덕무량) 三界特尊(삼계지존) 爲一切覆護(위일체부호)
'나의 신통력과 공덕은 한량이 없고 삼계에서 가장 거룩하며, 일체를 덮고 감싸고 보호하느니라.'
삼계(三界)= tri-dhātu. 유정이 생사윤회하며 머무는 욕계․색계․무색계의 세 가지 미혹의 세계.
①욕계(欲界, kāma-dhātu):음욕과 식욕 등 본능적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②색계(色界, rūpa-dhātu):음욕과 식욕을 여의었으며, 절묘한 물질[色]로 이루어진 청정한 세계이다. 이는 또한 네 단계 선정[四禪]에 의해 도달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③무색계(無色界, arūpa-dhātu):물질의 얽매임을 뛰어넘어 고도의 정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네 단계 무색정[四無色定]에 의해 도달되는 경지이기도 하다.
若一發惡念(약일발악념) 獲罪無量(획죄무량)
만약 한순간이라도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 한량없는 죄업을 받게 되나,
一發淨信(일발정신) 受人天樂 必得涅槃果(수인천락 필득열반과)
한순간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면 인간과 하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며, 반드시 열반의 과보를 얻으리라.'
(한순간 믿음을 내어 맑고 깨끗함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사람이나 하늘이 되어 즐거움 누릴 수 있게 되며, 반드시 열반(涅槃 nirvāna)이라는 마무리를 얻게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열반(涅槃)= 더 이상의 어떠한 고통, 욕망, 자의식이 없는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를 말한다. 깨달음에 의해 업보 및 윤회에서 해방된 상태이기도 하다.
인도의 고대 사상가들은 평안·안은·안락·행복·피안 등과 같은 이상을 목적으로 하여 이에 도달하는 것을 모크샤(Moksha)라 하였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निर्वाण(니르바나)라 한다. 어원에는 많은 설이 있으나, '(불을) 불어서 끄다, 또는 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과, '소멸한다'라는 뜻의 니르바 nirva 또는 '뚜껑을 없앤다'라는 뜻의 니르브리 nirvr라는 설 등이 유력하다.
한자로 음차를 해서 열반나(涅槃那), 열반(涅槃), 니원(泥洹) 이라고도 쓴다. 원래 涅는 '녈'이라고 읽고, 두음법칙으로 단어의 앞에 올 때는 '열'이 된다.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였던 것이 → 중국에서 한자어 "녈반"으로 음차되고 → 한국에서 두음법칙으로 "열반"이 된 것이다. 산스크리트식 "니르바나"와 한자를 거친 "열반" 모두 옳은 표기이다.
사실 열반나(涅槃那)는 한어로 net-ban-na 혹은 niet-buan-na 로 읽히는 음차 표기이다.
의역할 때는 '적멸'이라 한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여기서 '적멸'이 열반을 뜻한다. 모든 번뇌를 태워 버리고,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이 지극히 고요한 상태. 멸도 등으로 쓰기도 하는 참으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해탈(解脫) 역시 열반의 의역이다.
열반이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이기는 하지만 불교의 최종 목표는 열반이 아니라 무상정등정각, 즉 최상의 깨달음을 이룩하는 것이다. 열반은 무상정등정각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편인 삼승 중 하나에 속한다.
열반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부처처럼 육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열반에 든 경우(유여의열반)가 있고 육체가 소멸한 상태로 열반에 드는 경우(무여의열반) 두 가지가 있다. 쉽게 현생에서 해탈을 통해 열반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죽음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통한 열반의 과정을 잘 모르고 있는데 스님과 같은 사람들은 죽음을 통한 열반(무여의열반)을 거쳐왔다. 이처럼 열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고 현생에서의 열반, 죽음을 통해서도 열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시공불교사전, 원불교 대사전, 한국고전용어사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처음 담아낸 책인 디가 니까야의 첫 번째 경인 범망경에서 이에 대해 아주 짧게 나온다. 디가 니까야는 팔리어로 쓰였으며 제1차 결집 때 아난다 존자를 중심으로 석가모니의 직계 제자 약 500여 명이 만장일치를 통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하고 써낸 책이다. 범망경이란 '견해의 그물'이라고도 하며, 이런 견해에 집착 또는 머물면 열반에 들 수 없다 하고 '잘못된 견해'에 대해 설명 한다. 예시 중, '지금 이 자리에서 열반을 실현했다고 주장하는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오온의 기쁨, 선정을 통한 기쁨을 열반이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이다. 이를 다룬 팟캐스트도 있다
쉽게 말해 부귀, 자식의 성공 등 생전의 삶의 모습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털어내고) 이렇다 할 마음의 작용 없이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와 유사한 이치라 할 수 있다.
상좌부 불교의 교학관에 따르면, 색계 선정을 어느 정도 배양한 수행자는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들을 마음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고 여긴다. 이때 도과(道果, magga-phala)의 지혜 역시 배양된 상태라면, 열반을 대상으로 삼아서 관찰할 경우 밝은 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스님의 부고를 불교계에서는 "입적하셨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열반과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입적 이라는 말은 '완전한'이라는 의미의 접두사인 파리(pari)를 붙여 니르브리티(parinirvana, 귀환)이라고 한다. 한역으로는 반열반(般涅槃)으로 음사한다.
그런데 94년도 첫 수능에서 열반의 의미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열반에 들다"와 "입적하다"를 같은 의미로 판단하였다. 모르면 내지를 말든지. 중등교육에서 여기까지 파고들지 않는가 보다.
復次欲令人(부차욕령인) 信受法故言(신수법고언)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가르침=법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我是大師(아시대사) 有(유) 十力四無所畏(십력사무소외)
'나는 큰 스승이노라. 그러므로 10력(daśa-bala)과 4무외소(catur vaiśāradya)를 지녔으며,
10력(力)= daśa-bala. 부처님만이 지니는 열 가지 지적인 힘으로,
①도리에 맞는 것과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힘=處非處智力.
②업의 원인과 그 과보를 여실히 아는 힘=業異熟智力.
③4선․8해탈․3삼매․8등지 등의 선정을 아는 힘=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④중생근기의 깊고 얕음을 아는 힘=根上下智力.
⑤중생의 갖가지 바라는 바를 아는 힘=種種勝解智力.
⑥중생 및 제법의 본성을 아는 지력=種種界智力.
⑦중생이 사후에 지옥이나 열반 등을 향해 감을 아는 힘=遍趣行智力.
⑧자신 및 남의 과거를 기억해 내는 힘=宿住隨念智力.
⑨중생이 나고 죽는 모양을 아는 힘=死生智力.
⑩번뇌를 다한 경지와 그에 도달하는 방법을 아는 힘=漏盡智力.
*4무외소(無畏所)=catur vaiśāradya. 법을 설함에 있어서 흔들림 없는 네 가지 자신감,
①正等覺無畏(정등각무외)= “나”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얻어 위대한 스승으로 거짓 없이 말하니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라는 가르침.
②일체누진무외(一切漏盡無畏) = 반야바라밀다를 얻게 되면 모든 중생의 번뇌를 남김없이 씻어 주리니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라는 가르침.
③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참되지 아니한 것에 기대고 얽매이는 것이 장애의 바탕이어서 낱낱의 장애를 밝히시어 걸림이 없도록 설하시며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라는 가르침.
④설진고도무외(說塵苦道無畏)= 아픔과 괴로움 시름과 걱정 설움과 욕됨으로 점철되는 세속의 삶을 여의고 생사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道)을 가라고 설하시며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라는 가르침.
“무(無)”는 2가지 뜻이 있어, 첫 번째 중생의 입장에서 모든 것은 업(業)으로 빚어진 이 몸뚱이 속에 들어와 “나”라고 내세우며 주인 노릇하는 무명의 종자인 거짓된 이 마음을 참된 것이라 여기는 어리석음에 의한 인연의 업(業)으로 펼쳐지는 것이어서 쉼 없이 변하고 무너져, 마침내 사라지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하고 허무하기 그지없어 참됨이 없다는 뜻이며, 두 번째는 반대되는 개념이어서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은 바르고 분명하여 어김이 없어, 변하거나 무너지지 아니하기에 사라져 없어지지 않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소(所)”는 어느 때 어느 곳에 이 몸뚱이 머물고 있는 상황도 “소(所)”요, 욕망(慾望)으로 비롯된 세속의 삶에서 벗어나 출가(出家)하여 걸사(乞士)의 몸으로 아란야행을 하는 것도 “소(所)”여서 여기서는 뒤의 것을 이릅니다.
“외(畏)”는 직역하면 두려움이니 다른 말로 앞에서 나온 “의(疑)”와 비슷한 맥락으로 세속의 모든 것 내팽개치고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 뿐인 참된 길(道)을 닦으면 반드시 반야바라밀다를 이루게 된다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에 두려워 의심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세속의 부귀 권세 명예 다 버리고 걸사(乞士)가 되어 반야바라밀다를 닦으라고 하시는 부처님 참된 가르침에 두려움과 의심을 품는 것에 대하여 “외(畏)”와 “의(疑)”를 쓰니, 세속의 모든 것 내려놓고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 따라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에 두려움 내어서는 안되나니,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은 거짓이 없는 참된 것이기에 반드시 해탈을 이루어 생사고해를 벗어나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마하바라밀다경
安立聖主住處(안립성주주처) 心得自在(심득자재)
성인들의 주인=聖主가 머무는 (법왕(法王)이 머무는 곳인 중도(中道)의) 자리에 안립해서 마음이 자재로우며(걸림이 없으며),
能師子吼(능사자후) 轉妙法輪(전묘법륜) 於一切世界最尊最上(어일체세계최존최상)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하였으므로) 능히 사자후를 내어, 최상의 묘한 법륜( dharma-cakra)을 굴리나니, 일체의 세계 가운데 가장 존귀하고 가장 높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