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11 보살행품(菩薩行品)6

Skunky 2023. 5. 22. 07:00

 

◎不住無爲(불주무위) 
何謂菩薩不住無爲(하위보살불주무위) 謂修學空(위수학공) 不以空爲證(불이공위증)

무엇을 보살이 무위법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공을 수행하지만 공으로써 깨달음을 삼지 않으며, 

What does it mean for a bodhisattva to not dwell upon the unconditioned? It means that one cultivates and studies emptiness (Sunyata) but without taking emptiness as the proof. 

[不住無爲=무위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불교의 궁극은 무위법이지만 보살이 오로지 무위법에만 머물면 유위의 현실에 집착하고 사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해탈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이 끊어지고 만다. 그래서 유위법을 없애지도 아니하고 무위법에만 머물지도 않는것이 보살의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이다. 유위의 길과 무위의 길, 세속의 길과 열반의 길이 조화를 이루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수용하는 삶이 보살의 바람직한 삶이다.

공의 이치는 무위법이므로 공을 수학하지만 공으로 반드시 깨달음을 삼지 않는, 즉 공에 머물지 않는다.]

 

修學無相無作(수학무상무작) 不以無相無作爲證(불이무상무작위증)

차별이 없는=無相과 무작을 수행하지만, 무상과 무작으로써 깨달음을 삼지 않으며, 

Cultivates and studies formlessness and inaction, but without taking formlessness and inaction as proof. 

[현장은 ‘무작(無作)’이라 번역하였고, 티베트 역에서는 ‘무활동(無活動)’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승조(僧肇)의 주석(註釋)에 따른다.]

 

修學無起(수학무기) 不以無起爲證(불이무기위증)

모든 것은 인연이 없이 생하지 않음=無起를 수행하지만, 무기로써 깨달음을 삼지 않으며,

He cultivates and studies non-arising and does not take non-arising as proof. 

[무상과 무작과 무기는 무위법이므로 그것들을 수학하지만 그것들로서 깨달음을 삼지 않는다.]

 

觀於無常(관어무상) 而不厭善本(이불염선본) 무상을 관하되 선의 근본을 싫어하지 않으며, 

One observes impermanence, yet does not tire of the virtuous roots. 

 

觀世閒苦(관세간고) 而不惡生死(이불악생사) 세간의 고통을 관하되 생사를 미워하지 않으며, 

Observes the hardship of the human world, and not detest birth and death. 

[무상(無常)한 도리를 잘 알지만 무상으로 돌아갈 선법을 싫어하지 않고 세상사의 고통을 잘 알지만 생사의 고통까지도 싫어하지 않는 것이 보살이다소승 아라한은 보살과 달리 무상, 즉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觀於無我(관어무아) 而誨人不倦(이회인불권)

무아를 관하지만 사람들을 교화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으며, 

One perceives that there is the absence of self and still instructs others with tireless zeal. 

[무위법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 속에 소승의 길과 대승의 길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진실로 모든 존재[諸法]가 무아(無我)뿐이라면 누구를 가르치고 누구를 교화하고 누구를 제도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아니한다다만 소승적인 치우친 견해에 집착한 사람들의 견해가 오직 제법이 무아라고 말한다그러므로 대승보살은 무아의 이치를 잘 알지만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제도하고 열심히 교화한다적멸위락(寂滅爲樂)의 이치도 역시 그와 같아서 보살은 모든 법이 구경에 적멸하다는 것을 잘 안다그러나 적멸에 떨어져 있지 않는 것이 보살이다. 모든 법이 공이며무상이며무작이며무기며적멸이며무기며끝내 돌아갈 곳이 없음을 알지만 공이며무상이며무작이며무기며적멸이며무기인 선법에 돌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 치우치지 않고 사는 보살의 삶이다.]

 

觀於寂滅(관어적멸) 而不永滅(이불용멸)

깨달음의 경계=寂滅을 관하지만 영원히 적멸하지 않으며, 

Perceives upon nirvana, but not perpetually in nirvana. 

 

觀於遠離(관어원리) 而身心修善(이신심수선)

멀리 여읨=厭離를 관하지만, 몸과 마음으로 선을 닦으며,

Perceives upon being far away from the mundane world while cultivating goodness in mind and body.

[염리(厭離)= 이 세계는 괴로움의 세계이기 때문에 잊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觀無所歸(관무소귀) 而歸趣善法(이귀취선법)

돌아갈 곳이 없음=無所歸를 관하지만 선법으로 나아가 귀의하며, 

He perceives that there’s nowhere to return, but still takes refuge in all wholesome Dharmas. 

 

觀於無生(관어무생) 而以生法荷負一切(이이생법하부일체)

생하는 것이 아님=無生을 관하면서도 생멸의 법으로써 일체 중생을 다 荷負=짊어지며, 

He observes that there is no birth, yet with the Dharma of birth to carry the burden of all.

[觀於無生(관어무생)=무생을 관찰하지만, 생멸이 없는 이치를 잘 알지만, 생멸의 법으로써 일체 중생을 다 짊어진다.]

 

觀於無漏(관어무루) 而不斷諸漏(이부단제루)

번뇌가 없는 경계=無漏를 관하지만 온갖 번뇌=諸漏를 끊어 버리지 않으며, 

Looking upon freedom from inclinations without severing the many inclinations. 

 

觀無所行(관무소행) 而以行法敎化衆生(이이행법교화중생)

행할 바가 없음=無所行을 관하지만 법을 행함으로써중생을 교화하며, 

He sees the absence of action while carrying out the Dharma to educate and transform all living beings. 

 

觀於空無(관어공무) 而不捨大悲(이불사대비) 공과 무를 관하지만 대비를 버리지 않으며, 

Sees into emptiness, yet not forsaking great compassion. 

 

觀正法位(관정법위) 而不隨小乘(이불수소승)

정법의 경계=正法位를 관하지만 소승을 따르지 않으며, 

He perceives the position of the true Dharma and does not follow the Hinayana. 

[보살은 무위의 경지에 있으므로 생멸이 없는 법을 잘 터득하고 있다그러나 일체중생을 제도하려면 생멸의 이치를 등질 수 없다또한 번뇌에도 이미 떠났으나 우정 번뇌를 끊지 않는다일체 행을 행하되 행하는 바가 없으나 행함이 있는 법으로 중생을 교화한다오로지 중생의 근기에 맞추기 위함이다모든 법이 공무한 도리를 잘 알지만 중생을 위해 대자대비를 왕성하게 행한다보살이 정법의 지위에 머무르면서 소승을 따르지 아니한다는 것은 유마경의 본의가 소승을 꾸짖어 대승보살의 가르침을 선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줄기차게 소승을 배격한다유마경이 편찬되던 당시에 소승들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觀諸法虛妄(관제법허망) 無牢無人(무뇌무인) 無主無相(무주무상) 本願未滿(본윈미만)

而不虛福德(이부허복덕) 禪定智慧(선정지혜) 牢 우뢰 뢰

제법은 허망하고 견고함도 없는=無牢이며, 주인도 없고, 주체도 없고, 상도 없음을 관하며, 본래의 원=本願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복덕과 선정과 지혜가 헛되지 않으니, 

Sees that all Dharmas are not real, that’s not firm, has no independent nature, without a host or form. But when prior vows are unfulfilled, one does not regard the merits and virtues, meditative concentration, and wisdom as false. 

[중도적인 삶의 길이다.]

 

修如此法(수여차법) 是名菩薩不住無爲(시명보살불주무위)

이와 같은 법을 닦는 것을 보살이 무위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라.

One who practices such methods is called a bodhisattva that does not dwell upon conditioned existence.


又具福德故(우구복덕고) 不住無爲(불주무위)

또 (보살은) 복덕을 갖추었으니 무위법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Also, from possessing merit and virtue, one does not abide upon the unconditioned; 

 

具智慧故(구지혜고) 不盡有爲(불진유위) 지혜를 갖추었으니 다하지 않는 유위이며, 

from having wisdom, one does not further upon the conditioned. 

 

大慈悲故(대자비고) 不住無爲(불주무위) 대자대비하기 때문에 무위법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Because of great compassion, one does not abide in the unconditioned. 

 

滿本願故(만본원고) 不盡有爲(불진유위) 본원을 이루었기 때문에 유위법을 버리지 않으며,

For the cause of fulfilling a prior vow, one does not exhaust the conditioned. 

[이 다음에 나집 역에는 없는 장문(長文)의 문장이 현장과 티베트 역에는 있다.]

 

集法藥故(집법약고) 不住無爲(불주무위) 진리의 약을 모으기 위해서 머물지 않는 무위이며, 

To gather the medicine of the Dharmas, one does not stay in the unconditioned. 

 

隨授藥故(수수약고) 不盡有爲(불진유위)

필요에 따라서 진리(법)의 약을 베푸니 다하지 않는 유위이며, 

To subsequently give medicines, one does not exhaust the conditioned. 

 

知衆生病故(지중생병고) 不住無爲(불주무위)

중생의 병을 알기 때문에 무위법에 머무르지 않으며, 

Since one understands sentient beings are sick, so one does not remain in the unconditioned. 

 

滅衆生病故(멸중생병고) 不盡有爲(불진유위)

중생의 병을 없애기 위해서 유위법을 다하지 않으며, 

For the sake of dispelling the sickness of sentient beings, one doesn’t deplete the conditioned.

 

諸正士菩薩以修此法(제정사보살이수차법) 不盡有爲(불진유위) 不住無爲(불주무위)

是名盡無盡解脫法門(시명진무진해탈법문) 汝等當學(여등당학)!

모든 보살=正士들은 이와 같이 법을 닦음으로써 유위을 버리지 않고 (다하지 않고) 무위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이것을 다함이 있고, 다함이 없는 해탈법문이라고 이름하나니, 그대들은 마땅히 이를 배워야만 할 것이니라.'

Virtuous Ones, a bodhisattva who cultivates such a method, do not exhaust the conditioned nor abide in the unconditioned. It is called the exhaustible and inexhaustible Dharma gate of liberation, which you should all study. 

[진무진(盡無盡) 다하되 다함이 없는 해탈법문(解脫法門)이니, 다함이 없되 또 다하는 해탈법문, 얼른 들으면 말에 모순이 많은 것같지만 그러나 이것이 정법이다. 아주 수준높은 바른 법은 이렇다. 그러니까 어떤 세속적인 잣대로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는 이치이다.]


爾時彼諸菩薩聞說是法(이시피제보살문설시법) 皆大歡喜(개대환희)

그 때 저 중향국의 보살들이 이 가르침을 듣고 모두 다 크게 기뻐하여 

Thereupon, those bodhisattvas all rejoiced after hearing this Dharma, 

 

以衆妙華(지중묘화) 若干種色(약간종색) 若干種香(약간종향)

散遍三千大千世界(산변삼천대천세계)

갖가지 색깔과 여러 향기가 풍기는 아름다운 꽃들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흩뿌리고, 

scattering a host of wonderful flowers of various colours and fragrances throughout the three thousand worlds 

 

供飬於佛(공양어불) 及此經法(급차경법) 幷諸菩薩已(병제보살이)

부처님과 이 경의 법과 아울러 여러 보살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나서 

as an offering to the Buddha, the teachings of his sutra, and the bodhisattvas. 

 

稽首佛足(계수불족) 歎未曾有(탄미증유)! 言(언)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다.
So, they bow their heads at the feet of the Buddha while exclaiming that they had never heard of it before, saying,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 乃能於此善行方便(내능어차선행방편)

'석가모니부처님만이 이렇게 훌륭한 방편을 행하실 수 있을 뿐입니다.'
Wonderful is Shakymuni Buddha’s excellent use of skilful means! 

 

言已忽然不現(언이홀연불현) 還到彼國(환도피국)

말을 끝내자마자 홀연히 모습을 감추어 그들의 나라로 되돌아갔습니다.

After having stated this, they suddenly disappeared and returned to their own country.

 

[소승은 생멸법을 두려워하여 한사코 생각, 망념을 소멸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것을 정(定)을 얻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생각의 감각이 사라졌어도 그것은 여전히 파랑이고 평조(平潮)입니다. 높았다 낮았다하는 조수(潮水)가 아닙니다. 그러나 평조도 조수이니, 만약 이것이 도(道)요 공(空)이라고 여긴다면, 소승의 편견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소승인은 감히 생각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공정(空定)은 기껏해야 8만4천겁 동안입니다. 우리 범부들이 보기에는 마치 장구한 것 같아서 몹시 부럽게 느껴지지만, 정(定)속에 있는 사람의 감각은 단지 손가락 한 번 튕긴 것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서, 한 잠 자고 일어난 것과 같을 뿐입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역시 마음이 움직여 여전히 생멸법입니다. 그러므로 대승의 해탈이 아닙니다.

대승의 해탈은, 생멸(生滅)이 바로 불생멸(不生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말을 하고 있고, 듣고 있고, 보고 있는데 모두 염두가 생멸하고 있습니다. ‘생멸을 일으킬 수 있는 이것’은 움직인 적이 없으며 생도 없고 멸도 없습니다.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생겨나든 소멸하든 여여부동하면, 무생법인을 얻어 불이법문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다리 틀고 앉았을 때만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세속에 들어와 있을 때, 특히 자기를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하여 바쁜 중에도 곳곳마다 이점을 체험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대승을 닦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