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11 보살행품(菩薩行品)5
在諸禪定(재제선정) 如地獄想(여지옥상), 於生死中(어생사중) 如園觀想(여원관상)
갖가지 선정에 머물러 있는 것을 지옥에 머묾과 같이 생각하고,
생사윤회를 따르는 것을 정원을 관상하듯 즐겨 하고,
Regards being in various meditations, like thoughts of being in hell.
Perceives being amidst life and death as if it were a visit to the park.
[진정으로 고귀한 삶은 설사 허물이 있고 실수가 있더라도 시중에서 중생을 위해 봉사하고 전법하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삶을 귀하다하지 않는다. 선정에 있는 것을 지옥처럼 생각한다는 말은 선정은 훌륭한 수행이지만 자신의 선정만을 즐기고 중생교화에 관심이 없는 것은 차라리 선정을 얻지 못한 것보다 못하다. 그러므로 선정을 지옥처럼 생각한다고 하였다. 진실로 무진 해탈법문이며 대승보살의 진정한 길을 밝힌 내용이다.]
見來求者(견래구자) 爲善師想(위선사상), 捨諸所有(사제소유) 具一切智想(구일체지상)
가르침(법)을 구하여 찾아온 사람을 훌륭한 스승으로 생각하며,
온갖 소유한 것을 버리고 (보시하여) 일체 지혜를 구족할 것을 생각하며,
When he sees someone coming to him for a request, he regards him as his benevolent teacher.
To give up all that one has gained to attain all wisdom.
[具一切智想(구일체지상)= 나집은 “구일체지상(具一切智想)”이라고 번역하였으나, 현장은 “일체지(一切智)에 있어서 회향의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여 뜻이 분명하고, 티베트 역에서는 “일체지를 성취하는 것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깨달음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실은 모두가 생사 중에서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보살은 인생을 홀가분하게, 깃털처럼 가볍게 생각해서 죽고 살고, 가고 오고를 마치 동산에 놀러 다니는 것과 같이 여긴다.]
見毀戒人(견회계인) 起救護想(기구호상), 諸波羅蜜(제바라밀) 爲父母想(위부모상)
계율을 범하는 사람을 보면 구하여 보호해 주고 싶어 하며,
모든 바라밀을 부모라고 생각하며,
Upon seeing someone who has broken the precepts, one raises the thought of rescuing them.
Conceiving the various perfections as one’s father and mother.
道品之法(도품지법) 爲眷屬想(위권속상) 發行善根(발행선근) 無有齊限(무유제한)
道品之法=37도품을 권속이라 생각하며, 선근을 일으켜 행하되 제한이 없으며,
He considers the qualities conducive to awakening as his family members.
There’s no limit to the cultivation of virtuous roots;
以諸淨國嚴飾之事(이제쟁국엄식지사) 成己佛土(성기불토)
온갖 淨國=청정 국토를 훌륭하게 장식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불국토를 성취하며,
taking the glorious adornments of various pure lands to establish one’s own Buddha land.
[淨國(정국)= 일반적으로는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이 현실 세계는 번뇌에 더럽혀져 있으므로 예토(穢土)라 한다. 그러나 이 경전은 고정관념으로서의 불국토를 거부하고, 마음이 청정하면 그 나라도 청정하다고 하므로 굳이 불국토라고 번역하기보다는 그대로 정토(淨土)라 했다.]
行無限施(행무한시) 具足相好(구족상호) 除一切惡(제일체악) 淨身口意(정신구의)
한없는 보시를 행함으로써 상호를 갖추고, 모든 악을 없애서 신, 구, 의 3업을 청정하게 하며,
He practices boundless selfless giving to possess all the excellent marks and characteristics (of the Buddha);
eliminate all evil to purify one’s body, speech, and mind.
[無限施(무한시)= 나집은 ‘무한시(無限施)’라 했으나 현장은 “제상호(諸相好)를 위하여 원만하게 장엄하여 청정무애(淸淨無碍)한 대시(大施)를 수행한다” 하였으며, 티베트 역에서는 “상(相)과 종호(種好)를 완전하게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교할 수 없는 공시(供施)를 완전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뛰어난 상호를 얻는 일이 목적으로 되어 있고, 그 목적을 위해서 보시를 하는 것을 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보시와 결국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生死無數劫(생사무수겁) 意而有勇(의이유용) 聞佛無量德(문불무량덕) 志而不倦(지이불권)
무수한 겁동안 생사윤회를 거듭하여도, 굳은 용기를 마음에 지니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덕과 뜻이 갖추어져 있음을 듣고 스스로의 뜻을 게을러하지 않으며
Dwells amid countless kalpas of birth and death, possessing determination and courage.
Listen to the immeasurable virtues of the Buddha with tireless determination.
[인간으로 태어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行)으로, 몸에 좋고 정신에도 좋은 일을 항상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둘째는 여(與)로, 무엇이나 남에게 주고 베푸는 일이다. 셋째는 습(習)이다. 성인의 가르침이나 자신을 향상 발전시키는 공부를 항상 익히고 또 익히는 일이다. 남에게 베푸는 일을 무한히 실천하면 아름답고 덕이 있는 상호를 갖추게 되어 사람들이 호감을 갖는다.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 몸과 입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은 보살의 기본이다. 이와 같이 살면 생사를 거듭하는 길고 긴 세월 속에서도 그 마음은 씩씩하고 용감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부처님의 한량없는 덕을 알면 보살도 역시 뜻을 내어 덕을 갖추는데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된다.]
以智慧劍(이지혜검) 破煩惱賊(파번뇌적) 또 지혜의 검으로 번뇌의 도적을 물리치며,
With the sword of wisdom that slays the thieves of mental afflictions.
出陰界入(출음계입) 荷負衆生(하부중생) 永使解脫(용사해탈)
5온, 18계, 12입처에서 벗어나, 무거운 짐을 진 중생들을 영원히 해탈케 하며,
Transcending the (five) aggregates, (eighteen) realms, and (twelve) sense-bases,
carrying the burden of all living beings, and bringing them to eternal liberation.
以大精進(이대정진) 摧伏魔軍(최복마군) 常求無念實相智慧行(상구무념실상지혜행)
대정진으로 마군의 군대를 꺾어 항복시키고, 항상 무념으로 진실한 모습=實相의 지혜를 추구하며,
With great diligence, to subdue the army of Mara.
Ceaseless search for the thoughtless wisdom that’s the ultimate essence of things.
於世閒法少欲知足(어세간법소욕지족) 於出世閒求之無厭(어출세간구지무염)
세간법을 행하되 작은 욕심으로 만족할 줄 알며, 출세간을 구함에 싫어함이 없되 세간법을 버리지 않으며,
Content with few desires but does not abandon the things of the world.
He does not lose his awe-inspiring manner while living in accord with the worldly customs.
[번뇌가 곧 지혜라고 알면 그것이 지혜다. 그렇게 아는 사람에게는 번뇌란 없다. 평범한 중생들은 일생의 삶이 5음과 6입과 18계라는 일반적인 삶의 영역 속에서 뒤척이다가 끝내지만, 보살은 그것들을 멀리 벗어나서, 아니 그것들에 관심을 쓰지 않고 오로지 중생들을 짊어지고 그들을 해탈하게 하는 데만 마음을 쓴다. 그야말로 나물을 먹고 물만 마셔도 세상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사랑과 연민의 정을 버리지 않는것이 보살의 마음이다.]
而不捨世閒法(이불사세간법) 不壞威儀法而能隨俗(불괴위의법이능수속)
威儀法=위의를 무너뜨리지 않지만 세속을 따라 행할 줄 알며,
Guides all living beings by arousing from wisdom the supernatural powers.
起神通慧(기신통혜) 引導衆生(인도중생) 得念摠持(득념총지) 所聞不忘(소문불망)
신통력과 지혜를 일으켜 중생을 인도하고, 총지를 얻어 들은 가르침(법)을 잊지 않으며,
Attains a mind that has total retention, and not forgetting what he hears.
善別諸根(선별제근) 斷衆生疑(단중생의) 以樂說辯(이락설변) 演法無碍(연법무애)
중생들의 온작 근기를 판별=잘 구별하여 중생의 의혹을 끊어내며,
명료하게 바른 이치를 樂說辯= 즐겨 설하여 걸림이 없으며,
Good at distinguishing the various faculties of all sentient beings to sever their doubts.
With unhindered eloquence as he expounds on the Dharma with delight.
[요즘 수행자들은 세속을 너무 많이 따르다보니 속인인지 수행자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무너뜨리지 않고 세속을 수순하여 교화를 펼쳐야 한다. 중생을 불법으로 인도하는 데는 참으로 지혜, 즉 불교의 우수한 가르침을 많이 기억하여 잊지 않고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법을 설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수준과 근기를 잘 분별하여 알고 있어야 동문서답을 하지 않고 알맞은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만약 감기가 걸렸는데 설사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은 설법을 한다면 어느 때에 중생을 교화하겠는가. 설법에는 성의를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준비해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라고 생각할 때 그 설법이 말을 잘하는 변재가 되어 사람을 감동시킨다.]
淨十善道(정심선도) 受天人福(수천인복) 修四無量(수사무량) 開梵天道(개범천도)
10선도를 청정하게 닦아서 천상과 인간의 복을 받으며, 4무량을 닦아 범천의 길을 열며,
Perfecting the ten wholesome deeds to receive the blessings of devas and people.
Cultivating the four immeasurable to open the path of Brahma heavens.
[십선(十善)이란, 몸으로 하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과 입으로 하는 불망어(不妄語), 불기어(不綺語), 불악구(不惡口), 불양설(不兩舌)와 마음으로 짓는 불탐욕(不貪慾), 불진애(不瞋碍), 불사견(不邪見)이다. 산목숨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이며, 남의 소유를 훔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낌없이 베풀라는 것이며, 사음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녀관계를 도덕적으로 청정하게 생활한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대로만 말한다는 것이며, 입에 말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지하게 말한다는 것이며, 악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경과 찬탄으로 말한다는 것이며,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양쪽의 관계를 화합시킨다는 것이다. 탐욕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나누어 주는 마음이며, 성내지 않는다는 것은 자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며, 삿된 견해를 갖지 않는 다는 것은 지혜로서 바른 소견을 갖는다는 것이다. 열 가지 악한 것을 뒤집어서 열 가지 선한 길을 행하는 것이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육바라밀을 성취한 대승보살이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갖추고 있는 한량없는 네 가지 마음을 말한다. 자무량심(慈無量心)은 모든 중생에게 사랑으로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이 수행은 처음에는 가까운 이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모든 중생에게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간다. 비무량심(悲無量心)은 모든 중생에게 고통을 벗겨 주려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다. 어버이는 어린 자녀가 한없이 가엾고 애틋하듯 중생의 고통을 보는 보살은 끊임없는 비심(悲心)을 일으켜서 한없는 마음으로 중생의 고통을 없애 주려고 하게 된다. 이 역시 가까운 이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모든 중생에게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간다. 희무량심(喜無量心)은 모든 중생이 기쁨을 얻게 하고 그 기쁨에 동참하는 마음이다. 보살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뭇 중생이 고통을 여의고 낙을 얻어 기쁨을 느끼도록 하며, 그들의 기쁨을 진정으로 함께 나누는 마음을 지닌다. 이 역시 가까운 이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모든 중생에게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간다. 사무량심(捨無量心)은 모든 중생을 절대 평등하게 보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다. 중생은 오직 보살의 자비와 구제의 대상으로, 친(親)과 원(怨)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보살은 이와 같이 차별하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여긴다. 역시 가까운 이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모든 중생에게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간다. 이와 같은 사무량심을 실천하면 범천의 낙이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될것이다.]
勸請說法(근청설법) 隨喜讚善(수희찬선) 得佛音聲(득불음성)
身口意善(신구의선) 得佛威儀(득불위의)
부처님께 가르침(법)을 설하여 주시기를 권청하여 마음으로부터 기뻐하고 찬탄하며,
부처님의 음성을 얻어, 신, 구, 의 3업의 선함으로 부처님의 위의를 얻어서
Requesting the expounding of the Dharma, and with rejoice and praise from attaining the sound of the Buddha. Excellent in body, speech, and mind to attain the Buddha’s awe-inspiring manner.
[佛音聲(불음성)=부처님의 설법을 뜻한다. 경전이나 어록의 강설도 역시 부처님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다.
佛威儀(불위의)= 부처님의 거동과 위의란 몸과 말과 생각이 다른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深修善法(심수선법) 所行轉勝(소행전승), 以大乘敎(이대승교) 成菩薩僧(성보살승)
선한 법을 깊이 닦아서 행하는 바가 더욱더 수승하게 바뀌어서
대승의 가르침으로 보살 스님=菩薩僧을 성취하며,
Cultivating the wholesome teachings deeply and becoming more superb in one’s practice.
One follows the Mahayana teaching to become a bodhisattva monk.
[菩薩僧(보살승)=보살 스님이란 보살비구라는 말과 같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스님, 또는 비구라는 뜻이다. 출가수행자로서 가장 바람직한 호칭인데 대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야 가능하다.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해야 공부도 많이 하고 선행도 많이 쌓으며 업적도 많이 쌓인다.]
心無放逸(심무방일) 不失衆善(부실중선) 行如此法(행여차법)
是名菩薩不盡有爲(시명보살불진유위)
마음에 방일함이 없어서 모든 선함을 잃지 않는, 이와 같은 법을 보살의 다하지 않는 유위법이라고 하느니라.'
There is no negligence in the mind, and so one does not fail in doing the various good deeds.
One who practices such methods is called a bodhisattva that’s endlessly part of the conditioned existence.
[사람들은 대개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이 말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배우기보다 자신이 가르치기를 좋아한다. 그 버릇을 고쳐서 좀더 나아지려면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설법해 주기를 권청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비판하지 않고 따라서 기뻐하는 자세도 보살로서 꼭 필요한 덕목이다. 비록 모두가 유위법이지만 이러한 보살행들이 오래 오래 머물러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것이 대승불교가 해야 할 덕목들이다.]
[離諸邪見(이제사견) 得無生忍(득무생인)
기타의 종교에서는 대부분 우주 가운데에는 하나의 주재자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록 부처님을 믿지만 정견(正見)을 가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부처님을 배우는 사람은 지식인이며 자기의 마음을 믿어야 합니다. 공자의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 공자는 귀신을 반대한 것이 아니며 또 우리에게 미신을 타파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리를 유지해야 되며, 이 물건은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는 것 즉 가지고 놀게 되면 사람의 가치가 사라져버이는 것이니, 이런 것들이 삿된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식(唯識), 반야(般若), 중관(中觀)은 온갖 만법은 주재자가 없고 자연(自然)이 아니며 인연소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온갖 법은 자성이 없고 모두 인연입니다. 누구도 누구를 주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삿된 견해는 우리들이 멀리 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당신의 수행공부가 좋고 선정의 힘이 있더라도, 만약 견지(見地)가 또렷하지 못하다면 역시 성취하기가 어렵습니다. 견지는 관념으로, 이른바 5견(五見)이 있는데,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이 그것입니다. 비록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ㆍ교만ㆍ의심을 모두 평정하여 다스렸다[平伏] 하여도 이 5견이 있으면 여전히 외도입니다. 왜냐하면 반야정지견(般若正知見)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해려측(禪海蠡測)'이라는 책에서 평론하기를 동서양의 철학사상은 모조리 이 5견에 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수도 면에서의 삿된 견해는 너무나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차이가 난다면 바로 삿된 견해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5견 중의 사견(邪見)으로 떨어져 들어간 것입니다. ‘사(邪)’는 삐뚤어진 것이므로 주재자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사견입니다.
'반야경(般若經)'에는 62견(見), 62종의 견해, 즉 62종의 잘못된 사상관념이 도를 이룸을 가로막았습니다. 실재로는 62가지든, 108가지든 간에 바로 일념사이에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중생상(眾生相)ㆍ수자상(壽者相)을 없애버려 주관을 두지 말기 바랍니다.
약왕여래는 우리에게 진정한 법공양은 바로 ‘모든 사견을 떠나야 한다[離諸邪見]’고 했습니다. 떠날 수 있다면 도를 얻게 되고, 그러므로 ‘무생법인을 얻습니다[得無生忍]’,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생각 일어나지 않으니 온전한 본체가 드러나고, 6근이 움직이자마자 구름에 가려진다[一念不生全體現, 六根才動被雲遮]’라고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시험 삼아 묻기를 ‘보살은 어떻게 무생법인을 얻습니까?’라고 한다면 유마경의 한 문장인 ‘12인연 법칙에 수순하여, 모든 사견을 떠나고, 무생법인을 얻는다[隨順十二因緣, 離諸邪見, 得無生忍]’를 인용하면 맞습니다. 심지어 다시 간소화해서 ‘모든 사견을 떠난다’라고만 답해도 정확합니다.-홍남서원]